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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1 / 01

감사합니다는 네 가지

# 01. 감사합니다는, 네 가지

봉인의 탑에서 정원까지는 백스무 걸음이다. 세어 두었다.

세어 두면 걷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런 종류의 편안함을 좋아한다.

정원 문을 지나는데, 등 뒤에서 무언가 가볍게 당겨졌다.

*사르륵.*

돌아보니 덩굴 한 가닥이 오른쪽 날개 끝에 얹혀 있었다. 접었어야 할 것을 접지 않았다는 뜻이다.

근무가 끝나면 접는다. 그것이 순서인데, 나는 그 순서를 자주 가장 나중으로 미룬다.

"시로냐 님."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리엘아르 님이 고개를 들었다. 손끝에 흙이 조금 묻어 있었다.

"날개…"

"……접는 것을, 잊었습니다."

리엘아르 님은 웃지 않았다. 대신 발치의 작은 화분 하나를 두 손으로 들어, 내 날개가 닿지 않을 자리로 조용히 옮겨 놓았다.

정돈을 하시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원사는 늘 무언가를 제자리로 옮기니까.

"감사합니다."

리엘아르 님이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다치면 아까우니까요. 이 아이, 이제 겨우 뿌리를 내렸거든요."

내가 다치는 것과 화분이 다치는 것 중 어느 쪽을 말한 것인지, 리엘아르 님은 굳이 나누지 않았다. 두 가지 다일지도 모른다.

"시로냐 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저기 저 아이요. 볕이 반 뼘쯤 모자란 것 같아서요. 창가 쪽으로 조금만 옮겨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들면 자꾸 흙을 쏟아서."

나는 화분을 보았다.

무게가 주둥이 쪽으로 쏠려 있었다. 한 손으로 들면 기울어 흙이 쏟아진다.

아래를 두 손으로 받쳐 수평을 유지한 채 옮기면 한 톨도 흘리지 않는다. 이동 경로는 세 걸음, 중간의 물받이를 피해 반보 우회.

계획대로 옮겼다. 흙은 한 톨도 흘리지 않았다.

"…옮겼습니다."

"우와. 하나도 안 쏟으셨네요."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리엘아르 님이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작게 웃었다. 화분 하나를 옮기는 데 경로를 확인하는 사람은 흔치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흔한 편이 어느 쪽인지 아직 잘 모른다.

"그럼…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위 물뿌리개요. 선반 끝에 있는데, 제 키로는 아슬아슬해서."

리엘아르 님은 나보다 키가 크다. 그분이 아슬아슬하다면, 나는 더 아슬아슬하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날개를 썼다.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날개가 한 번 크게 저어졌고 —

*휘청.*

— 그 바람에 선반 끝의 물뿌리개가 밀렸다.

*또르르.*

물뿌리개가 선반을 벗어나 떨어졌다. 흙 위로. 리엘아르 님이 방금 심은 새싹 위로.

손끝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 판결의 빛 」

빛의 사슬이 물뿌리개 손잡이를 감아 허공에서 멈춰 세웠다. 물 한 방울이 새싹 옆 흙에 톡, 떨어졌다. 그뿐이었다.

*…철컹.*

사슬이 스르르 풀렸다. 나는 물뿌리개를 두 손으로 받아 가만히 내려놓았다.

정적이 흘렀다.

"…물뿌리개였습니다."

"…봉인의 탑에서 쓰시는 거, 맞죠? 방금 그거."

"맞습니다."

"물뿌리개한테는… 조금 과했을지도 몰라요."

과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새싹은 무사하지 않았나. 그거면 됐다.

"새싹이 무사합니다."

"…네. 그건, 그러네요."

리엘아르 님이 이번에는 참지 않고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거두고, 조금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렸어요. 제가 여쭐 걸 그랬는데."

"감사합니다."

리엘아르 님이 잠깐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미안한 얼굴을 풀었다.

"…그럼, 안 미안해할게요."

이상한 일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 적이 없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리엘아르 님은 괜찮다는 대답을 하셨다.

리엘아르 님이 잎사귀 한 장을 뜯어 내밀었다.

"시로냐 님, 이거 한 번 씹어 보실래요? 조금… 달아요. 전에, 아직 여러 가지 못 드셔 보셨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잎을 받아 살폈다.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갈라져 있고, 가운데 잎맥이 도드라졌다. 씹으면 잎맥이 먼저 끊길 것이다.

씹었다. 잎맥이 먼저 끊겼다.

"……처음에는 풀입니다. 세 번째 씹을 때, 끝에서 단맛이 옵니다."

"그쵸? 딱 세 번째쯤에요."

리엘아르 님이 기뻐했다. 세 번째에 단맛이 온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쁜 일인지 나는 몰랐지만, 기뻐하는 것을 보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리엘아르 님."

"네?"

"다른 분들이 리엘아르 님을 '요정님'이라 부르시는 걸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불러야 하는 호칭입니까? 아니면 '리엘아르 님'이 맞습니까?"

리엘아르 님이 손을 작게 저었다. 귀 뒤로 머리카락 한 가닥을 넘기며, 옅게 웃었다.

"아, 그건… 안 부르셔도 돼요. 그냥 놀리는 거예요, 다들."

"그러면 '요정님'은 어떤 분들이 쓰는 호칭입니까? 규칙이 있습니까?"

"규칙은… 딱히 없어요. 음, 시로냐 님은요? '세라핌'이라고 불리면, 어떠세요?"

되물어 오셨다. 리엘아르 님은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가끔 질문으로 돌려주신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저는 '시로냐'로 충분합니다."

"…그럼 저도, 그냥 '리엘아르'라고—"

"감사합니다."

리엘아르 님이 말을 멈췄다. 잠깐. 그러고는 더 밀지 않았다.

"…네. 여기까지 할게요."

또 그러셨다. 나는 고맙다고 했는데, 리엘아르 님은 "그만하자"는 대답을 하셨다. 마치 내가 조용히 문을 닫은 것을, 문소리도 없이 아신 것처럼.

그때 흰 나비 한 마리가 화단 위를 지났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계속 보았다.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선이 나비를 따라갔다.

나비가 왼쪽으로 돌면 시선도 왼쪽으로 돌았다. 하늘색 꽃 위에 앉을 것 같더니, 앉지 않고 다시 떠올랐다.

한 걸음, 나도 모르게 따라 옮겼다.

그러다 멈추고 돌아보았다. 리엘아르 님이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나비를 따라가는 것은, 어쩐지 순서가 아닌 것 같았다.

리엘아르 님은 이미 나를 보고 계셨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저 나비, 시로냐 님이 자꾸 눈으로 따라가시는 게 보여서요."

리엘아르 님이 하던 말을 멈추고, 잎 한 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나와 함께 나비를 보았다.

나비가 마침내 하얀 꽃 위에 앉았다. 날개를 두 번 접었다 폈다.

"감사합니다."

작게, 거의 나에게 하는 말로 그렇게 말했다. 리엘아르 님께 드린 말이 아니었다.

리엘아르 님은 대답하지 않으셨다. 잎을 한 바퀴 더 돌렸을 뿐이다.

처음이었다. 리엘아르 님이 내 "감사합니다"에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것이 정확한 대답이라는 것을. 방금 그 말은, 대답을 기다리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해가 기울었다. 정원의 빛이 낮게 깔렸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로냐 님, 날개…"

"……"

또 접지 않고 있었다.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곧바로 접지는 않았다.

"리엘아르 님. 여쭤도 되겠습니까."

"네."

"제 '감사합니다'는 다 같은 말입니다. 저도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리엘아르 님은 매번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마치, 다른 말을 들으신 것처럼."

리엘아르 님이 잠깐 생각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대신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음… 넷 다 참말이잖아요. 고맙고, 괜찮고, 그만하고 싶고, 혼자 다잡고. 다 진짜인데… 굳이 하나만 골라야 할까요?"

넷 다 참말. 그렇구나.

나는 그 말을 조금 오래 들여다보았다. 넷이 다 진짜라서, 같은 말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넷 중 어디에도 없는 다섯 번째가 목까지 올라왔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 오늘이 끝나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그런 것.

"…감사합니다."

리엘아르 님이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이번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 방금 건… 어느 쪽이에요?"

나도 몰랐다. 넷 중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다음에, 또 와도 되겠습니까."

말로 옮기고 나서야, 그것이 다섯 번째의 뜻이라는 걸 알았다.

리엘아르 님이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보다가, 이내 웃었다.

"그럼요. 그건… 그래도 어떻게든, 저도 잘 알아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날개를 접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접었다. 접고 나니 정원이 조금 더 넓어 보였다.

돌아가는 길은 다시 백스무 걸음이었다. 세면서 걸었다. 다음에 올 때는, 접는 것을 처음부터 기억할 것 같았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