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 01
심야 근무는 조용한 편이 좋다
# 01. 심야 근무는 조용한 편이 좋다
자정. 봉인의 탑 결계실은 좁고, 조용하다.
나는 그 조용함을 좋아한다. 심야 근무는 조용한 편이 좋다.
낮의 성역은 발소리와 목소리가 겹쳐, 손바닥이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사물공감은 끄고 켤 수 있는 게 아니다. 백 걸음 안의 물건이란 물건이 죄다 제 사연을 손바닥에 밀어 넣는다.
그래서 밤이 낫다. 밤의 결계실에는 결정체 하나와 나뿐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결정체 기둥은 천장까지 곧게 뻗어 있다. 표면에 새겨진 수천 개의 룬이 손끝에 하나하나 골로 만져진다. 오래된 신성력의 냉기가 손톱 밑으로 스민다. 차다.
손끝으로 룬을 훑었다. 빛이 느리게, 규칙적으로 뛴다. 심장처럼. 어긋난 곳은 없다.
"이상은 아니다."
혼잣말이었다. 됐다는 뜻이다.
점검이 끝나면 작업대로 간다. 쇠와 기름 냄새가 밴 구석이다.
나는 동료들 몫의 호신부에 룬을 새기던 중이었다. 큰 임무를 앞둔 주에는 하나씩 쥐여 주는 게 오래된 버릇이다. 말로 챙기는 재주가 없으니, 물건으로 챙긴다.
결계실이 조용하다는 건 남들 말이다. 내 손바닥에는 늘 뭔가가 걸린다.
식은 주전자에 밴 낮의 열기, 누가 오래 앉아 자국을 남긴 걸상, 남이 쓰다 둔 정의 손잡이에 밴 손땀. 오래 쓰인 물건일수록 손바닥에 남기는 게 많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손끝으로 눌러 재우고, 마지막으로 결정체를 짚는 것으로 밤을 연다.
그때 손바닥이 근질거렸다.
*삐거덕.*
낡은 걸상이었다. 밤새 저 혼자 몸을 뒤척이며 삐걱대고 있었다.
사물공감은 그런 걸 흘려보내지 못한다. 오래 눌린 다리의 무게가, 마른 이음매의 갈라짐이 손바닥 안쪽으로 배어든다. 딱했다.
문도 마찬가지였다. 봉인실로 드는 안쪽 문이다. 경첩이 뒤틀려, 여닫을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낸다.
대장장이가 앓는 물건을 앞에 두고 손을 놓기는 어렵다. 담금질하면 된다. 나는 그런 수선을 좋아한다.
걸상 다리에 백금색 불꽃을 둘렀다.
「 게브네의 모루 」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담금질이다.
견갑의 룬이 데워지고, 손끝에서 불꽃이 이음매를 핥는다. 한 번. 갈라졌던 이음매가 조여든다. 그런데 아직 덜 잡혔다는 저항이 손바닥에 남는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두드릴 때마다 나무가 쇠에 가까워지고, 다리로 올라오던 잔진동이 잦아든다.
*끄응—*
걸상이 굳었다. 시험 삼아 손바닥으로 눌러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제 부술 수 없다. 버릴 수도 없다.
그런데 삐걱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단단해진 만큼, 소리가 더 높고 날카로워졌다.
*삐이걱.*
…단단한 삐걱이 되었을 뿐이다.
대장장이의 손은 멈출 자리를 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다만 사물공감이 아직 남았다고 이를 때, 그 한 번을 참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문으로 갔다. 뒤틀린 경첩을 바로잡으려 문을 문틀에 붙이고 두드렸다.
담금질은 충격을 먹을수록 강해진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뒤틀림이 잡힐 때까지 두드렸다. 세 번째 타격에서, 문이 문틀의 결을 삼키기 시작했다.
문이 문틀과 한 몸이 되었다. 닫힌 채로, 뒤틀린 채로, 아다만티움을 넘어선 무엇으로.
밀어 보았다. 온몸의 무게를 실었다. 당겨 보았다. 어깨를 대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었다.
문은 미동도 없었다. 손바닥에 닿는 건 열도 틈도 아닌,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뿐이었다.
*쿵.*
열리지 않는다.
"…이상은, 아니다."
바깥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이쪽은 멀쩡한 문이다.
"공락 선배님, 안녕하세요! 심야 결계 근무 배정받은 밀르아라고—"
밝게 들어오던 신참이 멈췄다. 천장 들보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구가 안쪽 문을 어깨로 밀고 있는 걸 본 것이다.
"…어라? 그 문, 왜 안 열려요? 아까 낮엔 열렸는데…"
"이상은 아니다."
"이상은… 맞는 것 같은데요…?"
밀르아가 조심스레 다가와 안쪽 문을 살폈다. 손잡이를 흔들어 보고, 경첩을 들여다보고, 나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선배님이… 고치신 거예요?"
"고쳤다."
"근데 왜 안 열려요?"
"너무 잘 고쳤다."
밀르아가 입을 반쯤 벌린 채 문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밀르아가 벽에 걸린 지도를 흘긋 보더니, 딴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님. 여기 봉인의 탑, 사각형으로 둘러쌌다고 배웠는데… 탑은 왜 다섯 개예요?"
"…줄여 부르는 거다."
"아하. 어려워요."
지금 어려운 건 그게 아니었다.
밀르아가 소매를 걷었다. 성역의 가희라 불리는 신참은, 전투는 몰라도 신성력만은 남아돈다.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가늠하는지 본인이 아직 모른다는 거였다.
"제, 제가 열어 볼게요! 살짝만, 아주 살짝만 밀면—"
"기다려."
늦었다.
빛이 문을 밀었다. 문은 이제 벽보다 단단했다. 밀려날 데가 없는 힘은, 가장 약한 곳으로 샜다.
*콰앙!*
문 옆의 벽이 사라졌다.
문은 멀쩡했다.
밀르아가 제 손과, 뻥 뚫린 벽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 살살 민 손이었다.
"어… 어? 저는 분명 살짝 밀었는데, 왜 또 이렇게 세게…"
말끝이 기어들어갔다. 제 힘이 왜 늘 이 모양인지 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제가, 모자라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돌가루가 쏟아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앞을 등으로 막았다.
"뒤에 있어."
"넷!"
밀르아가 잽싸게 내 등 뒤로 붙었다. 정확히, 등 바로 뒤로.
그 바람에 실려, 또 다른 발소리가 들어왔다. 시로냐였다. 교대 시간이었다.
그녀는 방을 한 번 훑었다. 벽이 있던 자리와, 굳은 문과, 그 앞의 우리를 차례로 지나갔다.
그러고는 곧장 내 등 뒤로 걸어와 섰다.
"공락 씨. 뒤는 확보했습니다."
"…그래."
엄호가 아니라 위치 보고였다. 무엇을 확보했다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관뒀다.
시로냐의 시선이 문에, 그리고 벽 구멍에 닿았다.
"이 문은, 이론상 부술 수 없습니다."
"안다."
"벽은 부서졌습니다."
"…안다."
"둘의 단단함을 바꾸셨다면 좋았을 겁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벽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새로 산 물건이라면 아무것도 밴 게 없어 차라리 편한데, 오래 버틴 벽은 무너진 자리에도 제 흔적을 남긴다. 손바닥이 공연히 서늘했다.
밀르아가 사색이 되어 두 손을 모았다.
"죄, 죄송해요 시로냐 선배님! 제가 벽을, 제가 다…"
시로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생각하더니, 짧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네?"
밀르아가 굳었다.
"제, 제가 벽을 부쉈는데… 왜, 왜 감사를…?"
시로냐는 답하지 않았다. 그 "감사합니다"에는 네 가지 뜻이 겹쳐 있다는데, 방금 건 괜찮다는 뜻이었을 거다. 밀르아는 그걸 알 리 없으니, 눈만 더 동그래졌다.
밀르아가 무너진 벽 조각을 주섬주섬 주워 다시 쌓기 시작했다. 조각 하나를 얹으면 두 개가 굴러떨어졌다.
"이, 이렇게 하면 좀…"
시로냐가 그 손을 건조하게 지켜보았다.
"무게 중심이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 조각이 모자랍니다."
모자란 세 조각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걸상이 하나, 문이 하나, 벽이 하나. 고칠수록 더 큰 게 단단해지고 있었다.
남의 물건에 담금질을 걸 때마다 정신력이 한 겹씩 깎여, 손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삐이걱.*
굳은 걸상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혼자 울었다.
그때 뚫린 벽 구멍으로 전령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아이기스 심야조! 동트기 전에 분과장님 순찰 있습니다! 신참 첫 근무 점검 겸, 봉인실 안쪽까지 둘러보신다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셋이 동시에 안쪽 문을 보았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그 문을.
점검은 봉인실 안쪽까지 봐야 끝난다. 그 문이 열리지 않으면, 점검도 끝나지 않는다.
"시, 시간이… 얼마 없네요."
밀르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얼굴로는 애써 웃고 있었다.
얼굴은 그랬다. 속은 딴 소리를 지르고 있을 거다. 첫 근무인데 벽에 구멍을 냈어, 어떡해, 하는 소리.
나는 표정을 크게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 정도는 대강 짐작이 갔다. 모른 척하는 편이 서로 편하다.
셋이 흩어져 손을 놀렸다. 시로냐는 문틀의 뒤틀림을 눈으로 재고, 나는 다시 한번 어깨를 문에 붙여 보았다. 문은 여전히 냉기뿐이었다.
밀르아는 어쩔 줄 몰라 벽과 문 사이를 종종거렸다.
"뭐라도, 뭐라도 도울게요. 저 때문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게 없는 사람은, 결국 가만히 있질 못한다.
밀르아가 뚫린 벽을 두 손으로 막아 보려 애쓰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저 신참에게는 버릇이 하나 나온다.
흥얼거림이었다.
정작 노래하는 사람만 모르고, 소리는 결계실 전체로 퍼진다.
*우웅—*
결정체가 그 가락을 따라 울리기 시작했다. 룬의 빛이 노래에 장단을 맞췄다. 낮고 둥근 울림이 방을 채웠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발바닥에서 정강이로, 정강이에서 갈비뼈로 타고 오르는 떨림이었다. 작업대의 연장들이 그 떨림에 맞춰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결계실 전체가 밀르아의 숨에 맞춰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벽에 걸린 지도가 달그락거리고, 굴러떨어진 벽 조각들이 바닥에서 잘게 떨었다.
정작 밀르아는 콧노래가 깊어질수록 얼굴이 편안해졌다. 본인만 모르는 평화였다.
문제는 그 떨림이었다. 담금질 걸린 문은 충격을 먹을수록 강해진다.
울림은 아주 작은, 그러나 끊이지 않는 충격이었다. 문이 노랫가락에 맞춰, 한 겹씩 더 굳어 갔다.
물건들이 제자리에서 들썩였다. 망치가 굴렀다. 호신부가 작업대에서 미끄러졌다.
다만, 손끝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있다.
나는 손바닥 전체를 결정체 기둥에 붙였다. 어깨를 고정하고, 얕게 숨을 죽였다.
부서지는 건 가구지, 결정체가 아니다. 기둥이 노래를 따라 떨리는 게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올라왔다. 그 떨림을 내 쪽으로 끌어와, 결정체가 가락에 휩쓸리지 않게 붙들었다.
그게 내 본래 일이다. 가구는 엉망으로 만들어도, 이 일만은 어긋난 적이 없다.
시로냐가 밀르아를 보았다.
"밀르아 님. 노래 중이십니다."
"하?! 저, 전 노래 안 하는—"
*우웅—*
부정하는 동안에도, 결정체는 계속 울었다.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에엣?!"
밀르아가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울림이 잦아들었다. 문이 굳는 것도 멎었다.
대신, 다른 게 그녀 눈에 든 모양이었다.
"…핫!!! 넷!!! 저, 저기 구석에 뭔가—"
밀르아의 눈에는 남들이 못 보는 게 보인다. 이번에 그녀가 가리킨 건, 등불이 흔들려 진 그림자였다.
"…그림자다."
"…그,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시간이 자꾸 줄고 있었다.
동쪽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오래 어둡지는 않을 거다.
힘으로는 못 연다. 시로냐 말대로, 저 문은 이론상 부술 수 없다.
부술 수 없다면, 도로 펴면 된다.
"뒤틀린 걸 도로 펴면 돼."
내 말에 시로냐가 회백색 눈을 문에 고정했다. 한참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부술 수는 없지만, 뒤틀림을 되돌릴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사물의 무게중심이, 힘이 갈라지고 모이는 자리가 보인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경첩에서 세 치 위. 문이 처음 뒤틀린 자리입니다. 그 한 점을, 정확히."
문제는 힘이었다. 이제 저 문은 내 주먹보다 단단하다. 크루셰르로 내려쳐도 튕겨 나올 거다.
저 한 점을 밀어낼 힘은, 이 방에 하나뿐이었다. 넘치다 못해 벽을 뚫은, 그 힘.
"가희."
"넷!"
"네 힘, 저 한 점에만 실어."
"제, 제가요? 또… 또 뭔가 부수면—"
"안 부순다. 겨냥은 세라핌이 한다. 너는 밀기만 해."
밀르아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겁먹은 얼굴이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짧게만 말했다.
"뒤는 내가 막는다."
밀르아가 입술을 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냐가 문의 한 점에 손끝을 겨눴다. 빛의 선이 그 자리를 짚었다. 밀르아가 두 손을 모았다. 넘치던 신성력이 처음으로 갈 곳을 얻어, 손끝 한 점으로 좁게 모였다.
나는 오른 주먹에 백금색 불꽃을 감았다.
「 게브네의 모루 」
이번엔 남의 물건이 아니라 내 주먹이다.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게 나 자신이면, 정신력은 깎이지 않는다. 주먹이 쇠보다, 아다만티움보다 무거워졌다.
한 걸음. 온몸의 무게를 발바닥부터 어깨로, 어깨에서 주먹으로 밀어 올려, 시로냐가 짚은 그 한 점으로.
밀르아의 빛이 실리고, 시로냐의 겨냥이 얹히고, 담금질된 내 주먹이 들어갔다.
*쿠구구구—*
*철컥.*
문이, 처음 뒤틀리기 전의 자리로 돌아갔다.
경첩이 한 번 크게 숨을 쉬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부순 게 아니다. 도로 편 것이다.
셋이 동시에 숨을 뱉었다. 등 뒤에서 무너진 벽 조각이 뒤늦게 후드득 떨어졌다.
밀르아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넘치는 힘이 아무것도 부수지 않은 건, 아마 처음이었을 거다.
"…열렸어요."
밀르아가 중얼거렸다. 나는 짧게 답했다.
"열렸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결계실 입구로 발소리가 들어왔다.
리엘아르 분과장이었다.
그녀는 인사보다 먼저 결정체로 다가갔다. 열린 안쪽 문 너머 봉인실을 한 번 살피고, 다시 기둥의 룬을 들여다보더니, 작은 숨을 내쉬었다.
결정체는 무사했다. 그게 그녀가 가장 먼저 확인할 일이었고, 그 일만은 내가 지켰다.
그제야 분과장의 시선이 방을 돌았다.
무너진 벽.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문. 굳은 채 삐걱대는 걸상. 그 앞에 나란히 선, 죄책감으로 굳은 거구와 패닉으로 떠는 신참과 지나치게 평온한 세라핌.
그 눈이 우리 셋을 한 번씩 지나갔다. 얼굴보다 반 뼘쯤 안쪽을 들여다보는 눈이었다. 우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거기 든 게 다 옮겨 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안의 것과 눈앞의 광경이 도무지 맞물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잠깐만요."
그녀의 고개가 아주 천천히 기울었다.
"공락 씨. 여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도 될까요?"
"이상은 아니다."
내 대답에 시로냐가 정정했다.
"정확히는, 저 벽이 이론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은 부술 수 없고요."
밀르아가 허리를 접었다.
"죄송합니다 분과장님! 제, 제가 살살 한다고 한 건데—"
그다음 말은 삼켰지만,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왜 자꾸 벽이. 왜.
리엘아르 분과장이 뚫린 벽으로 손을 뻗었다가, 짚을 벽이 없어 허공을 만졌다.
"…공기가 무거워 보이는데. 아니, 이건 무게가 아니라…"
그녀가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벽이. …없네요."
늘 말끝을 열어 두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가능성을 남겨 두는 사람.
그 말버릇이 이번만은 끝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건 어떻게든… 어떻게……"
*삐이걱.*
굳은 걸상이 정적을 깼다.
리엘아르 분과장의 눈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저 걸상은, 왜…?"
그건 나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분과장은 더 캐묻지 않았다. 우리 얼굴을 한 번 더 훑고는, 거기 나쁜 뜻이 없다는 걸 확인한 사람처럼 시선을 거뒀다. 아주 작은 한숨.
"그래도… 다들 무사하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벽은 '정비 중'으로 기록됐다. 거짓은 아니다. 방금 전까지 우리는 정말로, 필사적으로 정비 중이었으니까.
동이 트고 있었다. 벽 구멍으로 회색 빛이 들어와 결정체 표면에 얹혔다. 밤새 밴 냉기가 조금씩 물러났다. 기름 냄새 위로, 아침의 찬 공기가 섞여 들었다.
나는 작업대에서 룬 호신부 두 개를 집었다. 자정부터 새기던 것들이다.
하나는 밀르아에게, 하나는 시로냐에게 내밀었다.
"가져가."
"핫! 넷!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시로냐는 두 손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 한 마디에 늘 네 가지 뜻이 겹쳐 있다는데, 이번 건 어느 쪽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진심 쪽이었을 거다.
시로냐가 돌아서다, 제자리로 돌아온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회백색 눈이 문을 한 번 훑었다.
"…튼튼합니다."
부술 수 없는 문이 됐다는 말이었다. 그걸 칭찬으로 들어야 할지, 나는 잠깐 고민했다.
셋이 나가고, 결계실에는 다시 결정체 하나와 나만 남았다.
조용한 밤이 좋다고, 자정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손바닥에 남은 건 조용함이 아니었다. 아직 식지 않은 노래의 잔열, 벽이 있던 자리의 바람, 두 사람의 무게.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 소란은, 됐다."
문을 닫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빈 걸상이 한 번 울었다.
*삐이걱.*
…저건, 다음 근무 때 다시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