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 01
한 걸음, 같이
돌바닥이 울렸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밑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왔다. 전투과 레퀴엠 구역의 공기는 달랐다. 숨을 들이쉬면 가슴 안쪽이 팽팽해지는, 날카로운 긴장이 벽에 배어 있었다.
벽면에는 검 문양이 박혀 있었다.
루시스를 쥔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하늘색 원석이 달린 스태프의 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가 멈추었다. 긴장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괜찮아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밝게 튀어 나왔다. 복도에 혼자인데도. 습관이었다. 떨릴수록 더 밝은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오는 건, 몸에 배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혼자 걸어온 시간이 길었다. 홀로 벽에 부딪히고, 홀로 일어서고, 홀로 기록하며 걸어온 길. 레퀴엠에 배정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분과장실 앞에 섰다. 문 위에도 검 문양. 한 번 숨을 고르고 손을 들었다.
*똑, 똑.*
"어, 왔네!"
문이 열리자마자 밝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역광에 앉아 있던 은빛 머리가 고개를 돌렸다. 파란 눈이 웃고 있었다.
"효리 맞지? 들어와, 들어와."
하세운 분과장이었다. 손을 흔드는 동작부터 빠르고 가벼웠다. 분과장실 안은 정돈되어 있었지만, 책상 모서리에 놓인 원드와 리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악기 같기도 하고 무기 같기도 한 것들이 창에서 드는 빛을 받아 미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퀴엠 소속 일급 대원, 효리입니—"
"dkssudg—"
말이 꼬였다.
입안에서 준비해 둔 문장이 영어 자판을 누른 것처럼 엉켜 나왔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하세운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깨가 덜덜 흔들릴 때까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 진짜 귀여워."
"죄, 죄송합니다."
"사과할 거 없어. 쏘 굿."
하세운이 책상을 한 번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물었다.
"점심 뭐 먹을 거야?"
"……네?"
"배고프지 않아? 나 아침도 안 먹었거든."
효리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긴장을 읽은 건지, 하세운은 능력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음식을 꺼냈다. 긴장이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 풀리는 건지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쏘 굿. 그럼 먼저 구경이나 하러 가자."
하세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손이 닿는 순간의 체온이 따뜻했다. 전투과의 날카로운 공기 속에서, 그 온기만큼은 확실했다.
"이쪽이야. 우리가 싸우는 곳 좀 보여줄게."
복도를 걸으며 공기가 바뀌었다.
분과장실의 따뜻함이 걷히고, 돌바닥의 울림이 짙어졌다. 벽면에 새겨진 룬이 더 촘촘해지고, 천장이 조금씩 높아졌다. 전투과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발끝의 진동으로 전해졌다.
"여기가 결계 전장이야."
하세운이 손을 뻗었다. 넓은 공간이 눈앞에 열렸다.
바닥에 룬 문양이 빛을 품고 있었고, 벽면을 따라 결계의 얇은 막이 명멸했다. 공기 자체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처럼, 한 발 들어서니 피부가 곤두섰다.
*웅—*
낮은 공명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전장이 숨 쉬는 소리 같았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있었다.
"안냐루~!"
화살을 든 검은 머리의 여성이 돌아서며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물음표가 열 개는 붙어 있을 법한 밝음으로.
"다들 괜찮지??????????"
효리는 눈을 깜빡였다. 인사인지 확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성은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달려오는 속도가 같았다. 활을 든 채 효리 앞에 멈추 섰다. 초록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 새로운 얼굴이다! 효리? 효리 맞지?"
"네, 맞습니다."
"돈친삼이야. 상급 대원. 말 편하게 해!"
"아, 네…… 예."
존댓말이 먼저 나왔다. 고치려다가 입이 굳어서 그대로 두었다.
"편하게 해도 되는데?"
"……익숙해서요. 죄송합니다."
"뭐, 됐어! 편할 때 바꾸면 되지, 안 그래 도펄?"
돈친삼이 뒤를 돌아보았다.
결계 전장 구석에 앉아 있던 은회색 머리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작고 가녀린 체구. 연하늘색 눈이 효리를 스쳤다가 돌아갔다.
"……배고파."
그것이 전부였다. 효리는 적당한 리액션을 찾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효리입니다."
"……정말?"
소녀가 효리의 손 — 정확히는 루시스 끝의 하늘색 원석 — 을 한 번 보았다. 그게 인사에 대한 대답인지 질문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저기, 도펄 선배님은 파견직이시라고 들었는데——"
"오늘 본부 들렀어. 며칠 쉬는 날이라."
돈친삼이 대답했다. 도펄은 이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뒤였다. 구석에 앉은 자리 옆에 빈 공간이 하나 있었다. 의자를 빼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 그럼 가볍게 움직여 볼까."
하세운이 결계 전장 안으로 들어서며 손뼉을 쳤다.
"효리, 적응 삼아 표적 하나 잡아봐. 어려운 거 아니야."
결계 전장 안에 빛의 표적이 하나 떠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위치를 바꾸며 빛나는 과녁이었다.
루시스를 바로잡았다. 표적을 보았다.
눈이 먼저 갔다.
표적이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전에, 시야가 이미 그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위치. 다음 빛.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스태프를 뻗고, 빛을 쏘고, 표적이 도착할 자리에 정확히 꽂았다.
*탁.*
한 번에 끝났다.
"어?"
돈친삼이 활을 내린 채 고개를 갸웃했다.
"왜 벌써 쐈어? 나 아직 조준도——"
"아, 괜찮아요!"
효리가 밝게 대답했다. 너무 빨랐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눈이 읽은 대로 몸이 움직였을 뿐인데, 돈친삼이 쏘려던 타이밍과 어긋나 있었다.
"괜찮아요! 다음엔 맞출게요."
맞추었다는 게 아니라 다음에 맞추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미 맞추었는데. 돈친삼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어. 그래, 그럼 다음 거."
두 번째 표적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돈친삼이 먼저 움직였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방향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각도가 틀어졌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었다.
"잠깐, 왼쪽 비었——"
돈친삼이 말을 끝내기 전에 효리가 이미 그쪽을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동선이 겹쳤다가 어긋났다. 표적은 맞았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같은 표적을 보고 있었다.
돈친삼이 활을 내렸다. 어깨를 풀며 고개를 기울였다.
"……너, 혼자 하는 게 익숙하지?"
그 말에 효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혼자 쓸 때는 문제가 없었다. 혼자 읽고, 혼자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같이 쓸 때는 달랐다.
루시스의 끝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번에는 발동의 의지를 담아서.
「 새벽의 빛 」
백은색과 옅은 하늘빛의 작은 깃털이 루시스 끝에서 피어올랐다. 깃털이 흩어지며 주변의 공기를 가늘게 당겼다. 집중력이 올라갔다. 시야가 또렷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세 번째 표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완벽했다.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느려 보였다. 표적의 궤도, 돈친삼의 발소리, 도펄이 구석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다 보였다.
그런데 돈친삼이 뭔가를 말했다. 입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돈친삼의 입 모양이 또 움직였다. 그래도 들리지 않았다. 세 번째.
"……네?"
돈친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방금 세 번이나 불렀어!"
"아…… 죄송합니다. 집중하느라."
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밝게 넘기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새벽의 빛이 피어 있을 때는 주변 소리가 멀어진다. 그건 혼자 쓸 때는 상관없었다. 같이 있을 때는 달랐다.
"괜찮아요!"
그래도 나왔다. 습관이라서.
깃털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소리가 돌아왔다. 돈친삼의 숨소리, 결계의 공명, 도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옷 스치는 소리가 한꺼번에 귀로 밀려들었다.
세 번째 표적이 빛을 잃고 사라져 있었다. 혼자서 잡은 셈이었다. 돈친삼은 활을 든 채 서 있었고, 도펄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아무도 같이 맞추지 못했다. 표적은 혼자 잡았고, 훈련은 혼자 끝났다.
하세운이 결계 밖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입가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파란 눈이 잠깐 효리의 손 — 루시스를 꽉 쥔 손가락 — 에 머물렀다.
"쏘 굿."
한마디만 남기고, 하세운은 돈친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돈친삼, 도펄 배고프다 했지? 나는 보고서 마무리하고 갈 테니까, 먼저 먹어."
"앗, 분과장님도 같이——"
"나는 밥 먹으면 졸려서. 알잖아."
하세운이 손을 흔들며 복도 쪽으로 사라졌다. 걸음이 가벼웠다. 뒤돌아보며 한마디 더 던졌다.
"효리, 어색하면 내일부터 같이 먹자고."
"어! 맞다. 도펄, 가자, 밥!"
돈친삼이 구석으로 뛰어갔다. 도펄이 천천히 일어섰다.
"……배고파."
"알아, 알아. 고기 있을 거야."
돈친삼이 도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도펄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 짧은 접촉 안에서 무언가 오래된 리듬이 느껴졌다. 효리는 두어 걸음 뒤에서 그 뒷모습을 보았다.
돈친삼이 말하고, 도펄이 한두 마디 대답하거나 침묵하는 것. 그 사이에 한 자리가 자연스럽게 비워져 있는 것. 아무도 그 자리를 지적하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서자 따뜻한 냄새가 밀려왔다.
전투과 구역의 날카로운 공기가 씻겨 나가고, 국물과 구운 고기의 냄새가 그 자리를 채웠다. 돌바닥의 울림 대신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효리는 끝자리를 찾았다. 혼자 앉던 자리. 밥을 빨리 먹고, 기록하고, 다시 나가는 것. 그렇게 해왔다.
"효리, 거기서 뭐 해! 이리 앉아!"
돈친삼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이미 도펄 옆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도펄은 고기 요리 앞에서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빨리."
도펄이 작게 말했다. 배고프니 빨리 먹자는 뜻인 것 같았다. 돈친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효리는 끝자리를 포기하고 돈친삼 옆에 앉았다.
"어디서 왔어? 전에 혼자 다녔어? 훈련 얼마나 했어? 그 스태프는 원래 쓰던 거야?"
돈친삼이 밥을 먹으며 물었다. 한 입 먹고 한 마디, 한 입 먹고 한 마디.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필리아에서 왔어요. 혼자…… 다닌 지는 오래됐고요."
"필리아! 거기 어디야? 바다 가까워?"
"바다요? ……오래 돌아다녀서, 잘 기억나지 않아요."
"나 바다 좋아하는 사람 부러워. 나는 한 번도—— 어, 잠깐, 근데 그 훈련에서 표적 몇 개 잡았어? 세 개? 네 개?"
"……세 개요."
"어? 벌써? 아, 맞다, 나 아까 하나도 못 쐈잖아."
돈친삼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부끄러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효리는 그 웃음에서 위압감 대신 편안함을 느꼈다.
"결계 전장이요. 표적이 움직이는 패턴이 있어서, 보다 보면——"
말이 길어졌다. 효리 자신도 놀랐다. 전술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진 건 처음이었다. 돈친삼이 젓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게 혼자 할 때랑 같이 할 때가 달라서……"
말이 멈추었다. 아까 훈련에서 어긋났던 것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적응하면 되니까요."
돈친삼이 젓가락을 내렸다.
"괜찮은 거 아니잖아."
효리는 입을 다물었다. 돈친삼의 초록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짚는 톤이었다. 입안에서 "괜찮아요"가 올라왔다. 늘 그랬듯이.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이 입술에서 붙었다. 떼어 내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돈친삼이 웃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읽혔다는 느낌이 아니라,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같이 하면 되지. 맞지, 도펄?"
돈친삼이 다시 밝아지며 도펄 쪽을 보았다.
"……응."
도펄이 고기를 씹으며 대답했다. 아까의 "……배고파."나 "……정말?"과는 다른, 조금 더 부드러운 끝이었다. 돈친삼에게만 나오는 톤이라고 했던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효리는 생각했다.
도펄의 시선이 효리 쪽으로 왔다. 정확히는 효리 옆에 세워둔 루시스. 하늘색 원석이 식당의 불빛을 받아 작게 빛나고 있었다.
도펄의 눈이 원석 위에 머물렀다. 떠나지 않았다. 고기를 씹던 입이 멈추었다.
"……반짝이네."
도펄이 말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선이 원석에서 효리의 얼굴로 올라왔다. 처음이었다. 인사할 때 스치고 지나간 시선이 아니라, 효리를 보고 있었다.
효리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먼저 그것을 보고, 그다음에 효리를 보았다. 루시스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태프의 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괜찮아요!"
나왔다. 또. 감동을 숨기고 밝게 덮는 것.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이 조금 무겁게 내려앉았다. 혼자 덮던 두께와는 달랐다.
돈친삼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괜찮은 건데?"
"……아무것도요."
"어? 그건 또 뭐야."
돈친삼이 웃으며 밥을 다시 떠먹었다. 도펄은 시선을 원석에서 고기로 옮겼다. 테이블 옆의 빈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었다.
오후의 빛이 기울었다.
식당을 나온 효리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본부에서 가장 높은 곳. 계단을 오르고, 다시 계단을 오르고, 옥상이 보이는 마지막 층에 닿았다.
바람이 왔다.
전투과 구역의 팽팽한 공기가 여기에서는 풀려 있었다. 높은 곳은 좋았다.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한 자들이 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답을 찾는 방법은 하나, 강해지는 것. 그래서 높은 곳에 올랐다. 혼자.
루시스를 쥔 손이 아직 따뜻했다. 새벽의 빛이 지나간 자국이 피부 안쪽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집중력이 올라갈 때 세상이 또렷해지는 감각은 좋았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좋지 않았다.
혼자 쓸 때는 문제가 없었다. 같이 쓸 때는 달랐다. 돈친삼이 무엇을 말했는지 듣지 못했다. 세 번이나 불렀는데.
돈친삼이 "괜찮은 거 아니잖아"라고 했을 때, 효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 "괜찮아요"가 먼저 나왔다. 늘 그랬다. 떨릴수록 더 밝은 목소리로 덮는 것. 그것이 편했다. 그것이 익숙했다.
발끝의 진동이 잦아들었다. 높은 곳의 적막이 두꺼운 솜처럼 내려앉았다.
*삐걱—*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바람 좀 쐴까 하고 올라왔는데——어?"
돈친삼이 마지막 계단을 오르며 효리를 발견했다. 활을 등에 멘 채로. 올라오다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왔다.
"여기 있었구나!"
돈친삼이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을 보았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빛의 성역의 지붕들이 오후의 빛을 받고 있었다.
"나도 가끔 와."
돈친삼이 말했다. 평소의 빠른 말투가 아니었다. 조금 느렸다.
"생각할 때. 아니, 아무 생각 안 할 때."
바람이 불었다. 돈친삼의 검은 머리가 흔들렸다. 활 끝이 바람에 가볍게 울렸다.
*스으—*
"다들 괜찮지?"
또 물었다. 효리는 이번에야 깨달았다. 그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돌아보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거기에 있는지, 다 같이 있는지를. 전투가 끝나면 가장 먼저 동료의 수를 세는 버릇. 일상에서도 나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나오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이고, 나오면 괜찮다는 뜻이라고.
효리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려다 멈추었다. 그 말은 입에 걸려 있었다. 항상 먼저 튀어나오던 것이, 이번에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먼저 나왔다.
"……선배님은요?"
돈친삼이 효리를 보았다.
"어?"
"괜찮으세요, 선배님?"
효리 자신도 놀랐다. 그 말이 나올 줄 몰랐다. 항상 "괜찮아요!"가 먼저였는데, 이번에는 물었다. 돈친삼에게. 괜찮은지를.
돈친삼의 초록 눈이 커졌다. 그러고는 활짝 웃었다.
"나? 당연하지! 다들 괜찮으면 나도 괜찮거든."
바람이 불었다. 루시스를 쥔 손이 따뜻했다.
해가 기울었다. 빛의 성역의 지붕이 주황으로 물들었다. 멀리 바다가 보였다. 효리가 좋아하는 색이 하늘색이라는 것을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이 높은 곳에서 보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그 색과 가까웠다.
돈친삼이 그쪽을 보고 있었다.
"예쁘다."
돈친삼이 작게 말했다. 효리가 본 것과 같은 방향을. 말이 없는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이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혼자 올라와서 혼자 보던 풍경이,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 조금 달라 보였다.
"가자, 저녁 시간이다."
돈친삼이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다들 괜찮지?"
효리는 그 손을 보았다.
혼자라면 잡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익숙한 몸이 먼저 사양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하루 동안, 돈친삼의 "다들 괜찮지?"를 세 번 넘게 들었다. 매번 같은 말인데 매번 확인하는 말이었다. 돈친삼이 옆에 앉아 같은 풍경을 보았다. 돈친삼이 "예쁘다"고 말했을 때, 효리도 같다고 생각했다.
루시스의 끝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새벽의 빛이 피어나지는 않았다. 발동이 아니었다.
손을 잡았다.
돈친삼이 힘주어 끌어당겼고, 효리는 일어섰다.
"선배님."
"어?"
"다들…… 괜찮으세요?"
돈친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효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 "괜찮아요!"가 아니라 "다들 괜찮으세요?"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잠깐이 걸렸다.
그러고는 크게 웃었다. 계단이 울릴 정도로.
"야, 너 지금 나 따라한 거야?"
효리도 웃었다. 작게. 혼자 덮던 웃음이 아니라, 같이 내놓는 웃음이었다.
돈친삼이 먼저 계단을 내려가며 또 말했다.
"가자, 다들 괜찮지?"
효리는 잠시 뒤에 따라 말했다.
"네, 다들요."
목소리가 밝았다. 익숙한 밝음이었는데, 어딘가가 달랐다. 덮는 밝음이 아니라, 물어보는 밝음이었다.
돌바닥이 또 울렸다. 오늘 아침 처음 디뎠을 때와 같은 진동. 그런데 발끝에서 올라오는 것이 조금 달랐다. 날카로움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