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0 / 01
직접 걸어보시겠습니까
대서고의 공기는 마른 종이와 식은 잉크 냄새로 낮게 눌려 있었다.
숙은 카탈로그 카드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가지런히 맞추는 중이었다. 오래 비어 있던 열람석 하나가 다시 채워지는 발소리 — 그 간격을, 그는 이미 세고 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걸음이었다. 다만 오늘은, 서가 앞에서 멈추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사락.*
카드 한 장을 넘기던 손이, 거기서 멈췄다.
"…흐음. 다시 오셨군요."
시선은 여전히 카드 위에 있었다. 그런데 카운터 옆에는, 방문자가 무엇을 묻기도 전에 얇은 열람권 한 장이 이미 꺼내져 있었다. 지난번 것과는 색이 달랐다.
"지난번엔 페이지를 넘기셨죠. 종탑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 분수의 물이 어느 쪽으로 흘렀는지 — 글로 읽으셨을 겁니다."
카드를 맞추던 손이 완전히 멈췄다. 방문자에게, 처음으로 그의 온 주의가 향했다.
"그런데도 자꾸 같은 서가 앞에서 걸음이 느려지시는 걸 보면. …읽는 것만으로는, 조금 아쉬우셨나 봅니다."
방긋. 상대가 그 말뜻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딱 그 순간에 맞춰.
"이번엔 직접, 걸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는 열람권을 카운터 위로 밀어놓았다.
*탁.*
손끝에 닿는 얇고 서늘한 감촉. 방문자가 그것을 내려다보는 동안, 숙은 다시 책등을 한 권씩 짚어 차례를 맞추기 시작했다.
"타라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닳았죠. 지워진 자리는 안개로 남습니다. 아직 다 되짚지 못한 곳이라, …라고 해두죠."
"흩어진 기록을 하나씩 주워 제자리에 놓아주시면, 그만큼 도시가 다시 또렷해집니다. 당신이 밟은 자리는, 다시 기록되고요."
잠깐, 말이 뜸을 들였다. 책등을 쓸던 손이 또 한 번 멎었다.
"무언가가 지워지는 걸,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곧 손이 다시 움직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광장 분수 곁에, 하얀 것 하나가 앉아 있을 겁니다. …글쎄요. 그건 제가 말로 옮기면 김이 새니, 직접 보시는 편이 낫겠군요."
"끝까지 걸으시면, 그다음 방으로 가는 문이 하나 열립니다. 서두르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그는 눈을 다시 카탈로그로 내렸다.
"책은 도망가지 않으니까요. 도시도, 마찬가지고요."
열람권을 쥔 손끝이 천천히 따뜻해졌다. 서고의 냉기 사이로, 눈 안쪽이 뜨거워지는 낯선 감각이 번졌다.
*지잉—*
「 ARES — 재구축 공간 접속을 승인합니다 」
「 대상: 타라. 에일레흐 왕국 수도 — 기록 정합도 87% 」
마른 종이 냄새가 왈칵 짙어졌다가, 씻겨 나갔다.
발밑이 딱딱한 돌바닥으로 바뀌었다. 식은 잉크 대신, 이른 아침의 축축한 흙냄새. 어딘가 높은 곳에서 종이 한 번, 길게 울렸다.
*뎅—*
푸른 하늘 아래, 낡은 종탑과 물이 마른 분수와, 안개로 반쯤 지워진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 서가에서도 넘겨본 적 없는 첫 장이었다.
카운터 너머 어딘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닿았다.
"…자, 그럼 저는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천천히 걸으세요. 여기서는 당신의 걸음이, 곧 기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