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S// 지식 아카이브
← 뛰어난 수호자의 합류는 언제나 환영이야

EP 01 / 01

뛰어난 수호자의 합류는 언제나 환영이야

기록갱신 홀의 룬 석판이 낮게 울렸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도 제풀에 떨리는 모양새가 꼭 신이 난 아이 같았다.

은빛 바닥 위로 다섯 개의 문양이 차례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검, 방패, 눈, 책, 그리고 손. 헤븐워커의 다섯 분과를 상징하는 문양들이다. 홀 가장자리에 반원형으로 늘어선 교관들 사이로, 한 훈련생의 이름이 적힌 서류가 넘어갔다.

라이라.

"마도 이론, 최상위."

두 번째 교관이 얇은 금속판을 넘겼다.

"실기 전술도 최상위입니다. 선지력 관측실 적응률도 기준치를 훌쩍 넘겼더군요."

"신성한 빛 운용은?"

"제어 자체는 안정적입니다. 다만……."

교관이 뒷말을 흐리자 홀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문제아라는 뜻은 아니었다. 지난 두 달간 훈련생들의 성장을 지켜봐 온 교관들에게 '특이하다'는 말은 일종의 기대감에 가까웠다.

첫 번째 교관이 라이라의 답안지를 들어 올렸다. 문장 끝마다 작은 별표와 화살표가 빼곡했다. 누가 채점한 표시가 아니었다. 라이라 본인이 시험지 여백에 남겨둔 계산 흔적이었다.

"답은 맞습니다. 풀이도 완벽하고요."

"그런데?"

"가끔 수업 교안에 역으로 빨간 펜을 긋고 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이 공식보다는 제8 변형식이 더 효율적임'이라고 적어놨군요."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누군가 낮게 헛기침을 삼켰다. 웃어넘기기엔 너무 우수했고, 진지하게 화를 내기엔 지나치게 성실한 흔적이었다.

"심판자 정신학 쪽 평가도 같습니까?"

"예. 질문을 너무 많이 합니다. 본인이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라 무시할 수도 없더군요."

"그건 좋은 일이지."

"예.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가면 아래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홀 안의 긴장이 탁 풀렸다. 라이라라는 이름은 문제 후보가 아니라, 앞으로 관리해야 할 가능성으로 옮겨졌다.

첫 번째 교관은 마지막 장을 넘기고 석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료 판정은 이견 없습니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 기록갱신 홀로 부르겠습니다."

라이라는 홀 입구에 서서 두 손을 뒤로 모았다.

조금 전 마친 작별식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교관들의 낯선 맨얼굴과 그들이 건넨 격려의 말들.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평소라면 바로 튀어나왔을 감탄사도 목구멍 아래로 꾹 눌러 담았다.

그래도 라이라는 고개를 당당히 들었다. 울먹이며 인사하는 건 왠지 지는 기분이었다.

"라이라 훈련생!"

"네!"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터져 나왔다. 홀 끝에 서 있던 교관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괜찮다는 신호 같아, 라이라는 어깨를 펴고 석판 앞으로 걸어갔다.

석판 중앙에는 다섯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문양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얇은 룬들이 서로 맞물려 선을 만들고, 선이 다시 빛의 홈을 따라 숨을 쉬듯 번졌다. 손을 올리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라이라는 손바닥을 천천히 얹었다.

차가웠다.

첫 번째 빛은 검의 문양에서 켜졌다. 짧고 날카롭게, 금속이 부딪치는 듯한 감각이 손끝을 스쳤다. 다음은 책. 차분하고 깊었다. 눈의 문양이 밝아질 때는 등 뒤에서 누가 조용히 지켜보는 것 같아 라이라는 모르게 목덜미를 움찔했다.

손의 문양이 마지막으로 지나가고, 방패가 남았다.

방패 문양은 다른 문양처럼 번쩍이지 않았다. 대신 느리게, 묵직하게, 한 번 켜진 뒤 오래 버텼다. 밝아진 선들이 석판 바깥으로 흘러나와 라이라의 손목을 감싸고, 다시 손바닥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이기스."

교관의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렸다.

"방위과 아이기스. 라이라 훈련생은 금일부로 헤븐워커 인번 23, 아이기스 분과 이등 대원으로 배정된다."

라이라는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 차갑던 석판의 감각이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었다. 방패. 지키는 쪽. 누군가의 뒤가 아니라, 누군가의 앞에 서야 하는 이름.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지는 게 쑥스러워, 라이라는 결국 입꼬리를 올렸다.

"와, 방패! 왠지 엄청 튼튼해 보이네요?"

홀 가장자리에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첫 번째 교관이 고개를 돌렸다.

"그 반응까지 기록할까요?"

"아뇨! 그건 제발 빼주세요!"

"이미 기록됐습니다."

"아카데미, 생각보다 뒤끝 있는 곳이었네요."

라이라의 목소리가 밝게 튀자, 작별식 뒤에 남아 있던 무거운 공기가 조금 더 흩어졌다. 교관들은 다시 엄격한 자세로 돌아섰지만, 마지막 인사만큼은 전보다 부드러웠다.

"수료를 축하합니다, 라이라 대원."

그 호칭이 처음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기록갱신 홀 방패 문양

기록갱신 홀을 나서자 검은 머리의 엘프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복도 한쪽 창가에 서 있었다. 아카데미 복도에는 바깥 풍경이 거의 없었는데, 그 창만은 이상하게도 잎이 흔들리는 빛을 비추고 있었다. 실제 나무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앞에 선 사람은 소란스러운 축하보다 조용한 그늘에 더 잘 어울렸다.

리엘아르 첫인상

"라이라 대원님, 맞으시죠?"

"네! 방금 막 임명된 따끈따끈한 신입입니다!"

여성이 아주 작게 웃었다. 라이라가 말하고 나서야 조금 과했나 싶어 눈을 굴렸지만, 상대는 불편해하지 않았다.

"리엘아르예요. 아이기스 현장 조사원이고, 오늘 본부까지 안내를 맡았어요."

"아이기스 선배님!"

"선배님이라니 쑥스럽네요. 그래도…… 우리 잘 해낼 수 있겠죠?"

리엘아르의 말끝은 늘 어딘가에 자리를 남겨두는 듯했다. 확정하지 않고, 밀어붙이지 않고, 상대가 숨을 고를 틈을 주는 말투였다. 라이라는 그 여백이 마음에 들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요! 잘 부탁드려요. 아,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아카데미에만 있다 보니 말투가 좀 딱딱해서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카일 분과장님도 아마 말 편한 쪽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분과장님이 말 편한 쪽을 더 좋아한다고요?"

"네. 그리고 아마, 처음 만나면 먹을 것을 권하실지도 몰라요."

라이라는 잠시 진지하게 생각했다.

"좋은 분이네요."

리엘아르가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웃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돌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의 납작한 룬석이었다. 표면에는 푸른빛이 도는 얇은 선들이 물결처럼 이어져 있었다.

"이건 귀환의 룬석이에요. 베리타스 수석 사서인 숙 님이 제작하셨고, 아카데미에서 본부로 이동할 때 쓰라고 전달받았어요."

"와, 멋진데요? 이거 잡으면 바로 가는 거예요?"

"네. 다만."

리엘아르가 룬석을 내려다보았다.

그 짧은 멈춤이 너무 정직해서, 라이라는 곧장 불길함을 읽었다.

"다만?"

"설명서가 같이 오지는 않았어요."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게 빠졌는데요?"

"아마 숙 님 기준으로는, 설명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만 사용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못 읽는 사람은요?"

리엘아르는 대답 대신 룬석을 조심스럽게 라이라 쪽으로 내밀었다. 아주 선량한 미소였다. 동시에 아주 미안한 미소이기도 했다.

라이라는 그것을 받아 들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좋아요. 오늘 몸으로 배우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죠."

"혹시 어지러우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어지러울 수 있다는 말은 지금 처음 듣는데요, 선배님?"

리엘아르가 눈을 살짝 피했다.

룬석이 빛났다.

바닥이 먼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라이라가 그렇게 느꼈다. 발밑의 감각이 얇게 접혔다가, 조금 늦게 다시 펼쳐졌다. 눈앞에는 아카데미의 복도가 아니라, 빛을 머금은 정원의 색이 번져 있었다. 허브 향이 먼저 들어왔고, 그다음에 물소리가 들렸고, 마지막으로 자기 몸이 아직 똑바로 서 있다는 사실이 도착했다.

라이라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이거 원래 바닥이 늦게 도착하는 방식인가요?"

"처음 이동하시는 분들은 가끔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분명 설명서에 적혀 있었을 내용이네요."

"그럴 것 같아요."

리엘아르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정직함이 더 얄미워서, 라이라는 웃음이 나왔다. 웃다가 다시 속이 울렁거려서 고개를 숙이자, 리엘아르는 이미 가까운 벤치 쪽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조금 앉았다 가실까요. 본부 안내는 도망가지 않으니까요."

"본부가 도망가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죠."

"네. 그 경우에는 아마 아이기스 전체가 많이 바빠질 거예요."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라이라는 벤치에 앉으며 정원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아카데미의 정돈된 복도와 달랐다. 빛을 머금은 잎들이 작게 흔들렸고, 중앙의 수정 샘에서는 맑은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군사 조직의 본부라기보다, 오래 다친 사람들이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만든 쉼터 같았다.

리엘아르는 물 한 잔을 건넸다.

귀환 룬석 정원 도착

"천천히 드세요."

"고마워요. 와, 진짜 살 것 같아요. 선배님은 원래 이렇게 사람 상태를 잘 봐요?"

리엘아르의 시선이 잠시 라이라의 손끝에 머물렀다. 그리고 곧 정원 쪽으로 돌아갔다.

"정원 일을 하다 보면, 잎이 처졌는지 아닌지는 보이니까요."

"저 지금 시든 잎 취급받은 거예요?"

"싫으셨나요?"

"아니요, 귀여워서 좋은데요?"

리엘아르는 잎 하나를 손끝으로 살짝 돌렸다. 대답 대신 그런 작은 움직임만 남았다. 라이라는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 신기하게 느꼈다.

아카데미에서의 두 달은 바빴다. 질문하고, 뛰고, 실패하고, 다시 배우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앉을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좋았다.

정원에서 충분히 숨을 고른 뒤, 리엘아르는 라이라를 방어 구역 쪽으로 안내했다.

빛의 성역은 이름처럼 환한 곳이었지만, 구역마다 빛의 결이 달랐다. 중앙 홀의 대리석 바닥은 맹세를 품은 것처럼 반짝였고, 생활 구역의 복도에는 식당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외곽으로 갈수록 공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발밑의 울림이 먼저 달라지고, 벽면에 새겨진 룬들이 더 촘촘해졌다.

"여기부터는 방어 구역이에요. 아이기스가 주로 맡는 곳이죠."

"분과 이름이 방패인 이유가 있었네."

"네. 저희는 무언가를 막는 일을 많이 해요. 다만, 막는다는 게 항상 싸운다는 뜻은 아니에요."

리엘아르는 걸음을 늦췄다. 그 앞에 탑이 보였다. 은빛 결정체가 내부에서 빛을 내고, 수천 개의 룬이 숨을 쉬듯 깜빡였다. 귀로 들리는 소리는 거의 없었다. 대신 바닥을 딛고 선 발끝으로 낮은 진동이 천천히 올라왔다.

라이라는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펼쳤다.

"소리가 아니라, 바닥을 타고 오는 느낌이네."

"맞아요. 처음에 그렇게 느끼셨다면, 꽤 잘 들으신 것 같아요."

"그거 칭찬이지?"

"네. 칭찬이에요."

라이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전이 때문에 흔들리던 몸이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고 있었다. 탑의 공명은 차갑고 낯설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아주 낮은 곳에서 같은 힘으로 버티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다.

"여기를 지키는 거구나."

"네."

리엘아르의 대답은 짧았다.

라이라는 그 짧은 대답 안에 들어 있는 무게를 더 묻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모든 설명을 한 번에 들으려 하면 중요한 순간에 숨이 모자란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그녀는 탑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봉인의 탑 첫 인사

리엘아르가 옆에서 잠깐 멈췄다.

"탑에게 하신 말인가요?"

"응. 첫 출근 장소가 될 수도 있잖아. 인사는 중요하지."

"그건… 좋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이기스 분과장실은 생각보다 덜 딱딱했다.

물론 문 위에는 방패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안쪽 벽에는 결계 순환표와 봉인의 탑 순찰 노선이 빼곡했다. 커다란 방패와 도끼가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여 있어 방 주인이 누구인지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책상 한쪽의 작은 쿠키 접시가 분위기를 묘하게 누그러뜨렸다.

그 간식 접시 뒤에서 검은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왔네."

그는 빛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창에서 들어온 빛 때문에 얼굴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한쪽 눈을 가린 안대와 느긋한 웃음은 이상하게 또렷했다.

"라이라 대원이지? 아이기스 분과장 카일이야. 오는 길에 안 넘어졌고?"

카일 역광 첫인사

"넘어지진 않았는데, 영혼은 중간에 한 번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아, 숙이 만든 룬석 썼구나."

카일은 놀라지도 않았다. 대신 접시를 라이라 쪽으로 밀었다.

"먹을래?"

분과장실 쿠키와 룬석

라이라는 간식 접시와 카일을 번갈아 보았다.

"분과장님, 혹시 모든 문제를 간식으로 해결하시나요?"

"아니. 큰 문제는 밥으로 해결하지."

"와, 신뢰감 장난 아니네요."

카일이 웃었다. 그 웃음은 가볍고 빠르게 공기를 바꿨다. 라이라가 품고 있던 긴장도 그 틈으로 조금 흘러나갔다. 리엘아르는 문가에 조용히 서서 두 사람의 속도를 지켜보다가, 라이라가 쿠키를 하나 집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숨을 내려놓았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그림자였다. 라이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목이 한 번 더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발의 자이언트가 문틀에 거의 맞닿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점검용 장갑이 들려 있었고, 시선은 라이라보다 먼저 책상 위의 룬석으로 향했다.

"록커킴. 봉인의 탑 신성 결정체 관리관."

카일이 짧게 소개했다.

"정식 인사는 차 자리에서 할 건데, 마침 지나가던 길이라 얼굴만 보고 가라 했어."

록커킴은 말없이 라이라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훑는 동안 위압감이 먼저 왔지만, 그 시선에는 이상하게 거친 것이 없었다. 그는 곧 책상 위의 귀환의 룬석을 손끝으로 살짝 밀었다.

라이라는 얼른 말했다.

"그거 아까 저를 약간 접었다 펼친 물건이에요."

록커킴이 룬석을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아주 잠깐, 그의 손가락이 표면의 룬을 따라 움직였다.

"새 물건이다."

"맞아. 그럼 상태도 알 수 있어?"

"상태는 좋다. 설명서가 없다."

카일이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만져봐야 아는 거야?"

"중요하다."

"맞지. 중요하지. 숙한테 말해둘게. 아마 '사용자가 직접 경험하는 방식의 안내'였다고 할 것 같지만."

라이라는 쿠키를 씹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 만나면 설명서부터 요청할게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옆에서 작은 방울 소리 같은 기척이 났다. 라이라는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애쉬 블론드 머리의 작은 여성이 문가에 서 있었다. 등에 접힌 날개가 문틀을 스치기 직전 멈춰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접었다.

"시로냐. 같은 아이기스 일급 대원이고, 봉인의 탑에서 같이 일해."

카일의 소개에 시로냐가 라이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이라 대원님."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시로냐는 잠시 라이라의 빠른 인사를 받아들이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라이라는 순간 멈췄다.

"어… 지금 내가 감사받은 거야?"

"네."

"왜?"

시로냐는 조금 생각했다.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정직해서,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잠깐 조용해졌다.

"인사를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아, 그럼 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카일이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리엘아르의 어깨도 작게 흔들렸다. 록커킴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룬석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 손끝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라이라는 그 반응들을 보고, 이상하게 안심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함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혼자만 이상한 곳에 떨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물건과 대화하듯 룬석을 읽고, 누군가는 인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감사를 돌려주고, 누군가는 분과장실에서 신입에게 쿠키부터 내밀었다.

그 사이에 서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카일이 책상 위의 순찰표를 접었다.

"업무 얘기는 차 마시면서 천천히 하자. 라이라 대원은 오늘 막 도착했고, 룬석한테 한 번 당했고, 교관들한테도 방금 막 풀려났잖아."

"풀려났다는 표현, 정확한 것 같아서 좀 슬프네요."

"아카데미 수료생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일단 정식 인사는 다 같이 앉아서 하자고. 리엘아르, 정원 쪽 준비됐지?"

"네. 제가 먼저 가서 자리를 봐둘게요."

시로냐가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시로냐 대원님."

"감사합니다."

라이라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번엔 누구한테 감사한 거야?"

"차를 준비할 기회와, 감사 인사를 받을 기회에 대해서입니다."

카일이 간식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건 철학으로 분류하자."

리엘아르는 조용히 웃으며 먼저 문밖으로 나섰고, 시로냐가 그 뒤를 따랐다. 작은 날개가 문틀을 스치지 않도록 한 번 더 접히는 움직임이 라이라의 눈에 남았다.

록커킴은 책상 위의 귀환의 룬석을 한 번 더 보더니, 문가로 몸을 돌리며 낮게 말했다.

"롸큰롤."

"그건 무슨 뜻이야?"

라이라가 묻자, 카일이 간식 접시를 제대로 고쳐 들었다.

"대충 좋은 뜻이야. 상황에 따라 더 좋은 뜻이기도 하고."

"좋아요. 그거 마음에 들어요."

"벌써?"

"응. 짧은데 멋있어."

록커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문을 나서기 전, 라이라가 지나갈 수 있게 몸을 반쯤 비켜주었다. 그의 큰 등이 복도 쪽 빛을 가리자, 라이라 앞에 짧은 그늘이 생겼다. 위협적인 그늘이 아니라, 누군가 잠깐 바람을 막아주는 것 같은 그늘이었다.

록커킴이 비켜준 그늘

라이라는 그 옆을 지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마워요."

"됐다."

록커킴은 곧장 카일의 뒤를 따르는 대신, 리엘아르와 시로냐가 먼저 나간 복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리 본다."

"자리도 점검 대상이야?"

"사람이 앉는다."

"좋아요. 오늘 배우는 게 많네요."

그 말도 짧았다.

그래서 더 분명했다.

정원 쪽 복도로 나오자 오후빛이 길게 흘러들고 있었다.

라이라는 아직 본부의 동선을 다 알지 못했다. 중앙 홀과 정원, 방어 구역과 분과장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섞였다. 하지만 앞서간 리엘아르와 시로냐의 발걸음은 이미 정원 쪽으로 사라졌고, 록커킴은 다른 통로로 먼저 갔다. 옆에는 카일이 간식 접시를 들고 있었다.

낯선 곳인데, 이상하게 혼자 걷는 느낌은 아니었다.

"라이라."

카일이 부르자, 라이라가 돌아보았다.

"네!"

"긴장돼?"

"조금요.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 제대로 배웠으니 다음엔 더 잘하면 되니까요."

카일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웃음을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평소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됐네."

복도 끝, 라흐 왕성 남쪽 회랑으로 이어지는 정원에서 향이 먼저 도착했다. 아직 정원 안은 보이지 않았지만, 찻잔이 놓이는 작은 소리와 물이 흐르는 소리가 회랑을 타고 낮게 번졌다. 라이라는 그쪽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켰다.

아이기스.

방패의 이름.

그리고 오늘부터, 자신이 걸어 들어갈 자리.

라이라는 쿠키 부스러기가 묻은 손끝을 털고, 정원으로 이어지는 빛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