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3 / 03
등불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 03. 등불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정원에는 어젯밤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밤새 식은 등불 유리는 아침 이슬을 얇게 뒤집어썼다. 손에 들면 서늘했다. 어젯밤 그토록 따뜻하던 것이 아침에는 그저 맑은 유리 조각 같았다.
효리가 방석을 하나씩 개어 쌓았다. 마지막 하나를 개려다, 손을 멈추고 그대로 두었다.
"이건… 그냥 여기 둘래요."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유라는 화로의 재를 고르고 잔을 씻어 엎어 두었다. 사람 수보다 하나 많은 잔을, 오늘 아침에는 세지 않았다.
밀르아가 하품을 삼키며 일어섰다.
"저는 오늘 밤 당직이라, 눈 좀 붙이고 올게요. 에헤헤…"
그러고는 정원 한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 우리가 둘러앉았던 자리께였다.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 이제는 굳이 묻지 않았다.
수레에 등불 상자를 실었다. 먼지가 슬그머니 상자 위로 올라타려는 것을, 츄니티가 한 손으로 집어 내렸다.
"먼지, 넌 안 가. 대서고는 발자국 하나도 기록에 남거든."
먼지가 억울하다는 듯 *야옹* 울었다.
"오~ 나 대서고는 처음인데."
라이라가 수레를 밀며 눈을 반짝였다.
"수석 사서님 계신 데 맞지? 왠지 좀 긴장되네~?"
츄니티는 대답 대신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상자 옆에 챙겨 넣었다. 『주간 헤븐워커』 여름 특집 초고였다. 어젯밤 일을 실으려면 서고에 확인받을 게 있다고 했다.
정원 어귀에서 리엘아르 선배와 마주쳤다.
"…정원, 잘 썼네요. 고마워요."
선배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여기가 어제보다 조금 따뜻해 보이네요. …왜일까요."
답을 기다리는 물음은 아니었다.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잎 한 장을 손끝으로 천천히 돌리며 정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서고는 벽이란 벽마다 책이 빼곡한, 성역에서 가장 큰 서고다.
문을 열자 오래된 종이와 마른 먼지 냄새가 밀려 나왔다. 정원의 풀 냄새가 씻겨 나간 자리에, 서늘하고 고른 공기가 들어찼다. 낮에도 밤에도 한결같은 유리 천장의 빛이 서가 사이로 내렸다.
빌린 여섯이 아침에 일곱이 되어 있었다는 것은, 대서고에 들어서며 이미 알아버린 일이다. 장부에도 처음부터 일곱이라 적혀 있었다. 우리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카운터에 사서가 나오기 전의 일이다.
곧 서가 안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옅은 미소를 띤 사서가 카운터 뒤에 섰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노아였다. 나와 츄니티는 같은 베리타스라, 이 사람과는 낯이 익었다.
"등불 반납이요. 그리고—"
츄니티가 초고를 카운터에 올렸다.
"이건 분과장님께 확인받을 게 있어서요. 여름 특집에 서고 얘기가 들어가거든요."
노아가 초고를 받아 서가 안쪽으로 한 번 넘겨 보냈다. 그러고는 반납 서식을 펼쳤다.
"반납 절차는 셋입니다. 수량을 맞추고, 상태를 살피고, 장부에 적어 인계합니다. …그럼 수량부터."
그가 상자를 열었다. 등불을 하나씩 짚어 세더니, 손이 잠깐 멎었다.
"일곱입니다."
"여섯이요."
츄니티가 곧바로 받았다. 수첩을 펼쳐 보였다.
"제가 어제 빌린 건 여섯이에요. 여기, 대출. 등불 여섯. 제 글씨는 틀리는 법이 없고요."
"대출란에는 일곱으로 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장부를 돌려 보였다. 두 기록이 카운터 위에 마주 놓였다. 수첩의 여섯과, 장부의 일곱.
노아는 두 장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담담하게 결론을 내렸다.
"장부에 이상은 없습니다. 대출 일곱, 반납 일곱. 수치는 맞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맞다는 말이, 그 자리에서 제일 이상하게 들렸다.
츄니티가 장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정갈한 글씨를 누가 언제 적었는지 들여다보려는 참이었다.
바로 그때, 서가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뚝 멎었다.
책장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손에는 츄니티의 초고가 들려 있었다. 걷는 내내 눈은 종이에 있었다. 어느 대목에선가 걸음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카운터 앞에 이르러서야 그가 초고에서 눈을 들었다. 우리 셋을 천천히 훑는 눈길이었다.
"…흐음. 잘 다녀오셨습니까, 여러분."
숙 분과장이었다. 베리타스의 수석 사서. 좀처럼 서고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카운터 너머로 마주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라이라가 그 앞에서 잠깐 말을 잃었다.
무엇을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을 처음 마주한 순간, 어깨가 아주 작게 굳었다가 풀렸다. 라이라 자신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카운터 위에는 어느새 김이 오르는 찻잔이 놓여 있었다.
"저, 분과장님."
라이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긴장을 밀어내려는 듯 목소리가 조금 높았다.
"그래서 등불, 일곱 개예요 여섯 개예요? 딱 잘라서—"
"등불은 도망가지 않으니, 차부터 드시지요."
숙이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라이라가 "어…" 하고 말끝을 흐렸다. 딱 잘라 달라던 물음이, 찻잔 앞에서 그만 갈 곳을 잃었다.
그동안 노아는 곁에서 묵묵히 두 번째 절차를 밟았다. 등불을 하나씩 들어 유리에 금이 갔는지 살피고 심지를 확인했다. 손이 느리고 규칙적이었다.
숙이 카운터를 돌아 반납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지나는 길에 서가의 빈자리에 그것을 꽂아 넣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책에게 하는 말이었다.
츄니티가 수첩을 고쳐 쥐었다. 기자의 얼굴이었다.
"분과장님. 여쭐 게 있어요."
숙이 그 아이를 보았다.
"어젯밤 저희가 빌린 등불은 여섯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일곱이 됐고, 장부에도 일곱이라 적혀 있어요. 하나는… 어디서 온 겁니까."
숙은 대답하기 전에, 노아가 펼쳐 둔 장부를 잠깐 내려다보았다. 그뿐이었다. 장부를 끌어당기지도, 넘겨 보지도 않았다.
"서고는 들어온 것을 묻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는 서고의 일이 아니지요. 서고는 그저 적을 뿐입니다. 들어온 것을, 들어온 그대로."
유리 천장에서 내리는 고른 빛 아래,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라이라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그 일곱 번째 등불은, 누구 건데요?"
숙이 그 아이를 보았다. 곤란해하는 기색도, 얼버무리는 기색도 없었다.
"기록이 맞고, 물건이 돌아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서고가 물을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회피가 아니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으로 메우지 않을 뿐이었다. 츄니티의 펜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 더 캐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카운터에 나란히 놓인 일곱 개의 등불을 보았다.
일곱은 하나같이 꼭 같은 얼굴이었다. 같은 크기의 유리, 같은 결의 놋쇠, 같은 높이의 심지. 어느 것이 어젯밤 여섯에 끼어든 하나인지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가려낼 수 없었다.
숙이 초고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츄니티에게 돌려주는 손길이었다.
그러다 한 대목에서 손끝이 종이 위에 잠깐 머물렀다. 내가 어젯밤 소리 내어 읽은 그 기록이, 초고에 옮겨져 있는 대목이었다.
"이 기록 말입니다."
그가 나를 보았다.
"서고에 한 부, 두고 가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수첩은 내 밤이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내 손으로 적은 것. 언젠가부터 나는 그 안에 나 자신도 한 줄씩 적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더욱 쉽게 내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본은 안 돼요."
내가 말했다.
"대신 옮겨 적어서 가져올게요. 한 부. 그런데—"
나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답을 적는 칸은, 비워 둔 채로예요. 일곱 번째가 누구 건지 저도 모르니까요."
숙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 아침 들어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비워 두신 칸도 기록의 일부입니다."
그가 말했다.
"서고는… 빈칸을 오래 보관하는 곳이거든요. 언젠가 채워질지도, 끝내 비어 있을지도 모르지요. 어느 쪽이든 서고는 그 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말의 온기를 알아차리는 데 잠깐이 걸렸다.
내가 늘 비워 두던 그 칸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는다는 뜻이었다. 적는 사람이, 처음으로 제 기록을 맡길 자리를 얻은 셈이었다.
"그럼 소장 서식을 하나."
노아가 그제야 카드 한 장을 꺼냈다. 펜을 들더니 잠깐 멈추고 물었다.
"제목 칸은… 뭐라고 적을까요."
셋의 눈이 동시에 나에게로 왔다.
"…그건 좀, 생각해 볼게요."
내가 말하자, 라이라가 "효리랑 똑같은 소리 하네~" 하고 작게 웃었다.
노아가 반납란에 마지막 숫자를 적었다.
일곱.
대출 일곱, 반납 일곱. 세상의 장부에는 처음부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대서고 문턱을 넘으며 라이라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후아~ 나 왜 아까부터 계속 긴장했지~? 이상하네~"
라이라 자신도 답을 모르는 물음이었다. 그러니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숙의 목소리가 낮게 따라왔다. 상자에 담긴 등불을 향해, 조금 전 책에게 하던 그 말투 그대로.
"…수고하셨습니다."
몇을 향한 인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카운터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등불 상자를 앞에 두고 그저 고요히 서 있었다.
숙 분과장님은, 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