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3 / 10
길목
# 3화 — 길목
엘리시온은 듣지 않았다.
"이 회수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분과장."
세이렌의 목소리는 잔잔했고, 그래서 더 단단했다. 물 위는 고요하나 아래는 깊은 목소리.
"장서관의 늦은 나비 전서는 우리가 회수합니다. 우리 혼자서. 위험은 우리가 집니다."
그가 기억하는 그 새벽에도 똑같이 말했다. 그리고 죽을 뻔했다. 그를 구하러 들어간 하인리티스가, 대신 천장을 졌다. 엘리시온은 그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짊어진 위험만 기억하며 살았다.
엑타르는 설득하지 않았다. 전에 그는 설득하려 했고, 실패했다. 같은 수단은 같은 결과를 낳는다. 엘리시온은 너무 많은 것을 삼키려는 자였고, 정면으로 막으면 더 깊이, 더 혼자 들어간다.
세이렌은 체내에 동족의 영혼들을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늘 자신을 우리라 불렀고, 그래서 늘 혼자 더 많이 짊어지려 했다. 자기 하나가 무거워지는 것은 분과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 고집을 꺾을 수 없다면, 같이 무거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세이렌의 권능은, 새기는 것이었다. 제가 겪은 것을, 동족이 겪은 것을 사물에 새겨, 두 번 다시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세이렌은 아무것도 잊지 못했다. 잊지 못하는 것이 권능이자 형벌인 자였다.
엑타르는 그때, 그 권능의 무게만 보았다. 그것이 언젠가 지움의 정반대편에 설 것임을—새기는 자만이 지우는 자를 멈춰 세울 수 있음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막는 대신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
"예. 형제의 임무입니다."
그가 잠깐 뜸을 들였다.
"다만, 성소를 비우기 전에 한 가지만. 동쪽 서고 세 번째 열, 바닥의 문양을 확인하십시오. 늦은 나비 전서는 그곳에 없습니다. 그건 미끼입니다."
"……무슨 근거로."
"양식이 에레보스의 서약입니다. 밟는 순간 서고가 닫히고, 천장의 하중이 풀립니다. 압사형 봉인이지요. 진본은 그쪽이 아니라 서편 벽의 움푹한 자리에 있습니다. 동쪽은 시선을 끄는 미끼고요." 그가 잠깐 끊었다. "어떻게 아느냐는, 묻지 마십시오. 이단입니다. 처리하겠습니다."
엘리시온은 오래 그를 보았다. 그리고—이것이 엘리시온이었다—더 묻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삼키려는 자는, 타인이 정확히 내미는 것의 무게를 알아본다.
"……분과장이 동행한다면."
양보가 아니라, 거래였다.
"예, 형제."
녹턴은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엑타르는 변화무쌍한 갑주의 덧판을 일부 떼어내, 하체의 기동성을 높였다. 마찰음 없는 합금이었다. 그는 장서관 서편 외벽 앞에 잠시 섰다. 벽을 두드리지 않았다. 두드릴 곳을 *이미 알았다.*
전에 그는 이 벽을 부수는 데 한나절을 썼다. 구조를 모른 채, 소리를 죽이지 못한 채. 그 한나절이 적에게 함정을 완성할 시간을 주었다. 이번엔 손끝으로 단번에 한 지점을 짚었다.
신의 언어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이 구조가 어디서 약하고, 어디서 무너지도록 설계되었는지 한눈에 읽었다.
지움을 먹는 자들이 즐겨 쓰는 함정에는 공통된 문법이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이 아니라 무게이고, 무게는 늘 가장 약한 이음매를 먼저 찾는다. 엑타르는 그 문법을, 끝을 보기까지 내내 외웠다. 적이 같은 도면을 두 번 쓴다는 것이, 그들의 실수였고 그의 이점이었다.
*투웅—.*
벽이 안으로 무너졌다. 먼지조차 거의 일지 않았다. 경보 문양은 울리지 않았다—그어진 자리를 피해, 비어 있는 한 뼘으로 벽을 열었으니까.
서고 안은 어두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다. 에레보스의 서약. 공허를 섬기며 세계를 지우는 비밀 교단의 추종자들. 그가 기억하는 그 새벽, 이 어둠이 엘리시온을 삼키고 하인리티스를 깔아뭉갰다.
이번엔 엑타르가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던 방향의 반대편에서.
"형제. 서편 벽의 진본만 회수하십시오."
그가 낮게 말했다.
"안개가 피어오르거든, 뒤돌아보지 말고 나가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제 일입니다."
그는 후드의 이마, 라이미라크의 심볼에 손을 댔다. 손끝에 찬 신성력이 고였다.
*스으으—….*
회색빛 안개가 서고를 둥근 구로 차올랐다.
「 인필트레이터즈 디스코드 」
안개에 닿는 순간, 적들을 잇던 보이지 않는 실이 한꺼번에 끊겼다. 서로를 부르던 신호도, 빠져나갈 길도. 천장의 룬으로 흐르던 발동 신호마저, 그 침묵에 함께 묻혔다. 닫히려던 봉인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
그 잠깐이 전부였다.
엑타르는 마스크를 썼다. 습격자의 얼굴. 윗부분이 세월에 소실되어 반쪽만 남은, 죽은 전사의 얼굴을 본뜬 것. 그 너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읽지 못하는 것.
어디를 보는지 모르는 자는, 모두를 동시에 본다고 느껴진다. 그 착각이 곧 공포였다. 안개 속에서 반쪽 얼굴이 천천히 도는 것만으로, 가장 가까운 추종자의 숨이 가빠졌다. 무기를 쥔 손등에 핏줄이 섰다. 셋이었다.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안개 너머를 헛되이 더듬었다.
엑타르는, 그들이 보는 곳에 없었다.
*철컥.*
방아쇠의 첫 마디를 당기자, 창대 끝에서 푸른 불씨가 튀었다.
「 카에룰루스 플람메 」
*화르르륵— 콰앙!*
푸른 화염이 안개를 찢으며 왼쪽 서가를 삼켰다. 셋이 일제히 그쪽으로 무기를 돌렸다.
화염은 미끼였다.
불빛이 그들의 눈을 빼앗은 그 찰나, 엑타르는 이미 그 등 뒤에 있었다. 터뜨리는 창이 아니었다. 한 점으로 조여, 베는 창이었다.
*서걱.*
첫 번째 목이, 떨어진 줄도 모른 채 떨어졌다.
그러나 두 번째는 짐승의 감각으로 등 뒤를 읽었다. 돌아서며 곡도를 올려쳤다. 정면으로 맞물리는 대신, 엑타르는 창대를 비스듬히 흘렸다—그래도 충격은 손목에서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거슬러 올랐고, 그의 발이 반보 밀렸다. 마찰음 없던 갑주가, 처음으로 돌바닥을 긁었다.
상대가 그 반보를 노리고 곡도를 되감았다.
늦었다. 엑타르의 엄지가 트리거를 손톱만큼 눌렀다. 화염은 터지는 대신 창날 한 뼘으로 조여 들었다.
*쩌억—*
절단선이 목뼈 한 마디를 정확히 가르고 지났다. 두 번째가, 곡도를 되감은 자세 그대로 무너졌다.
마지막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도망이 아니었다. 두 손바닥을 바닥의 문양에 짓이기고 있었다—그가 기억하는, 천장을 무너뜨린 그 문양. 하인리티스를 깔아뭉갠 그 하중. 문양의 골을 따라, 붉은 빛이 한 마디씩 차올랐다.
발동까지, 세 마디.
엑타르의 창은 아직 두 걸음 밖이었다.
두 마디.
그가 바닥을 박찼다. 존댓말이, 그 한 호흡에 사라졌다.
"전부. 끝내라."
*콰드득—!*
창이 문양과 두 손을 함께 갈랐다. 붉은 빛이 마지막 한 마디를 채우지 못하고 꺼졌다. 의식은 발동되지 못했다. 천장은, 천장으로 남았다.
안개가 걷혔다.
천장은 그 자리에 있었다. 진본은 엘리시온의 손에 있었다. 엘리시온은 무사했다. 하인리티스는 올 필요조차 없었다. 그를 구하러 천장 아래로 뛰어들 일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가 겪은 모든 새벽을 통틀어, 이 새벽을 살아서 넘긴 것은 처음이었다.
엑타르는 한순간, 그 사실의 무게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막을 수 있었다. 알면, 막을 수 있었다. 그 단순한 진실이, 처음으로 그를 살게 했다.
엑타르는 마스크를 벗었다. 숨을 골랐다. 헛기침.
그리고 익숙한 일이 일어났다.
오늘 아침 그의 골방 문을 세 번 두드린 자. 분과장에게 경어를 쓰지 않는 자. 그가 천장 아래에서 끌어내지 않아도 되었던 자. 그 이름을 떠올리려 했다.
비어 있었다.
얼굴은 선명했다. 건조한 눈, 깎아낸 윤곽. 그러나 이름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름이, 모래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공백만 남았다.
기억을 바꾸면, 기억이 흐려진다.
엑타르는 그제야 대가의 형태를 정확히 이해했다. 산화의 끝에서 그를 본 그것이, 그를 따라 여기까지 와 있었다. 그가 죽음 하나를 고쳐 쓸 때마다, 그것은 또렷한 기록 하나를 청구했다. 다섯의 얼굴로 시작해, 이제 산 자의 이름까지.
지움은, 그의 무기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살리면 잃는다. 그것이 거래의 조건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미래에서 지워 살릴 때마다, 그것은 그 이름을 그의 기억에서 거둬갔다. 공정한 거래는 아니었다. 그러나 엑타르는, 불공정한 거래를 거절해 본 적이 없는 자였다.
엑타르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시 숨을 골랐다. 갑옷의 틈을 닫았다.
그때, 서고의 젖은 바닥에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하얀 나비 한 마리. 그리고 그 아래, 어디서 왔는지 모를 한 장의 종이.
엑타르는 그것을 집었다. 늦은 나비 전서—방금 엘리시온이 회수해 봉인한 그것이었다. 봉인은 뜯기지 않았는데, 안의 글자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그제야 알았다. 이 전서가 적어 온 것은 늘 다가오는 죽음의 순서였음을. 다만 끝을 한 번 본 자만이, 그 차례를 미리 읽을 수 있었다.
종이 위, 한 이름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가 방금 살려낸, 그러나 이제는 떠올릴 수 없는 그 이름이.
그리고 그 아래, 새 글자가 젖은 잉크처럼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엑타르는 그것을 읽었다.
엘리시온.
비켜난 죽음이, 다른 이름을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