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4 / 10
예언자거나, 적이거나
# 4화 — 예언자거나, 적이거나
품속의 전서가, 걸음마다 뜨거워졌다.
엘리시온의 이름 위로, 붉은 줄이 자라고 있었다. 장서관에서 그를 살린 값이었다. 죽음은 막힌 자리에서 비껴나, 같은 이름에게 다시 손을 뻗고 있었다. 엑타르는 그 속도를 알았다. 길어야 한나절. 그 안에 줄을 멈추지 못하면, 이름은 다 덮인다.
그래서 그는, 협의체의 호출이 하필 지금 온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가장 빠져나오기 어려운 방이, 가장 나쁜 시간에 채워졌다. 변론으로 이길 자리가 아니었다—최단 시간에 벗어나야 할 자리였다. 여기서 보내는 매 순간이, 엘리시온의 이름을 한 자씩 덮을 테니까.
협의체의 둥근 방에, 이번에는 분과장들이 자리해 있었다.
지난 새벽 도즈가 엑타르 하나만 들이려 비워 두었던 자리들이, 오늘은 채워져 있었다. 레퀴엠의 하세운이 맨 앞에 팔짱을 낀 채였고, 그 곁으로 분과장들이 늘어앉았다. 다만 두 자리는 끝내 비어 있었다. 분과장을 잃고 아직 새 사람을 세우지 못한 아이기스와, 베리타스. 베리타스의 빈 분과장석은, 수석 사서 숙이 대신 지키고 있었다. 두꺼운 기록부를 펼쳐 둔 채로.
엑타르는 그 기록부를 보고, 호출의 이유를 알았다.
숙은 그가 들어서는 동안 시선을 들지 않았다. 카탈로그 카드의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추는 손만이, 그의 걸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흐음. 녹턴 분과장께서, 오셨군요."
숙이 입을 열었다. 카드를 맞추던 손은 그가 들어선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베리타스의 수석 사서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기록은, 높여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젯밤 장서관 일은 잘 들었습니다. 사흘 걸릴 구조를 한순간에 읽으셨다지요—문양 양식도, 하중이 풀리는 자리도, 진본 위치까지."
그가 기록부의 빈 한 칸을 손끝으로 짚었다.
"다만 그 한순간이 어디서 왔는지, 적어 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칸은, 베리타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지요."
하세운이 숙의 말을 잘랐다. 에두르는 말을 끝까지 듣고 있을 자가 아니었다.
"에둘러 말할 것 없어, 녹턴 분과장. 적의 함정을 적보다 먼저 아는 자는, 둘 중 하나야."
그녀가 팔짱을 풀었다.
"예언자거나—적이거나."
방 안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엑타르의 품에서, 전서가 또 한 번 무거워졌다.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의 바깥에서, 시간이 한 사람의 이름을 한 마디씩 덮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변론하는 매 순간이, 엘리시온의 줄을 자라게 했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아는지를, 이 방의 누가 무게로 받아 주겠는가. 도즈 하나면 족했다—감별하는 자에게는 진실이 곧 증거였으니까. 그러나 나머지에게 그 앎은, 가장 의심스러운 종류의 말이었다.
"이름을 대."
하세운이 낮게 말했다.
"네게 미래를 일러준다는 그 정보원. 이름 하나면, 이 자리는 끝나."
엑타르는 그 이름을 떠올리려 했다.
누가 그에게 미래를 일러주는가. 그 자신이었다. 끝까지 갔다가 돌아온 자기 자신. 그러나 요즘은, 그 자신의 이름조차 손가락 사이로 샜다. 정보원을 대라는 물음 앞에서 그가 쥔 것은, 다섯의 빈자리와 같은 종류의 공백이었다.
엑타르가 말했다.
"……그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방에서 그것은, 가장 능란한 회피로 들렸다. 하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방 안의 공기가, 한 겹 더 차가워졌다.
"변론은, 그만두겠습니다."
엑타르가 고개를 들었다. 이길 수 없는 변론이었다. 그러나 이 방을 가장 빨리 여는 열쇠가, 그에게 하나 있었다.
"대신 하나만 묻겠습니다. 오늘 정오, 이 협의체가 의결하려는 작전이 있지요. 북부 수도원에서 넘어온 귀순자의 정보로, 에레보스의 서약 세포 하나를 친다. 레퀴엠이 선봉, 퇴로는 경계 분과가 맡는다. ……맞습니까."
하세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아직 이 방을 나가지 않은 작전이야. 어떻게."
"그 귀순자는, 귀순자가 아닙니다."
엑타르가 말했다.
"매개체입니다. 그 작전은 세포를 치는 도면이 아니라, 레퀴엠을 묻으려는 함정입니다. 장서관의 천장을 무너뜨리려던 것과, 같은 손이 그린 같은 문법이고요."
하세운이 일어섰다. 그 작전은 그녀의 분과의 일이었고, 그녀는 제 사람을 함정에 보낸다는 말을 가만히 들을 자가 아니었다.
"증명해. 그 귀순자를, 지금 이리 데려와."
귀순자가 끌려 나왔다. 사슬에 묶인 채, 겁먹은 얼굴로. 베리타스의 심문에 사흘을 견디고도 한 점 흠을 보이지 않은 자였다. 숙의 기록부에, 그의 진술은 전부 참으로 적혀 있었다.
엑타르는 그 앞에 섰다. 이번에 쓸 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후드의 심볼이 아니라, 맨손이었다.
그는 귀순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매개체였다—이 자를 보낸 손으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실마리. 손바닥이 닿은 자리로, 그의 것이 아닌 무게가 천천히 흘러들기 시작했다.
「 오스 오브 모먼트 」
"네 죄를 아느냐."
엑타르가 물었다. 그의 것이 아닌 무게가, 그의 입을 빌렸다. 귀순자의 동공이 풀렸다. 사흘을 버틴 가면에, 한 물음으로 금이 갔다.
"……안다."
귀순자가 아닌 것이, 귀순자의 입으로 답했다.
"길은 열려있다."
엑타르가 말했다.
"가라."
순간의 맹세는 죄를 아는 자에게 길을 연다. 도망칠 길이 아니라, 그를 보낸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엑타르의 시야에만, 한 줄기 빛무리가 떠올랐다. 귀순자의 이마에서 풀려나 협의체의 벽을 지나, 도시 북쪽—자정의 매복 자리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었다.
엑타르는 그 길을 따라 읽었다. 자정의 매복 자리. 레퀴엠 절반을 삼킬, 압사형 봉인. 에레보스의 서약 양식으로 짜인 그것은—장서관을 무너뜨리려던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손이었다.
숙의 펜이 멈췄다. 사흘을 참으로 적어 온 기록이, 한순간에 틀린 것이 되었다. 베리타스의 수석 사서가, 제 기록이 무너지는 것을 처음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도즈가 일어섰다.
"작전을 거둡니다."
총대장의 한마디에, 방 안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정오의 의결은 없습니다. 하세운 분과장. 당신의 분과는, 오늘 밤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
하세운은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엑타르를 보았다. 비난도 감사도 아닌—두 가지가 섞여 가라앉지 못하는 눈으로.
"내 사람 절반을. 방금, 네가 살렸어."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너는 끝내 이름을 대지 않았어. 어떻게 아는지도. ……고맙다. 그리고 그래서, 전보다 네가 더 무섭다."
엑타르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고 있었다—늘 그가 믿어온 대로. 그러나 정당화된 결과도, 그를 향한 의심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권능에는 값이 있었다. 늘 그랬다. 오스 오브 모먼트의 다리를 놓는 동안, 그것은 또 한 조각을 거뒀다. 방을 나서려다, 엑타르는 문득 한 자리가 비는 것을 느꼈다. 방금 살려낸 분과장의 이름이—조금 전까지 또렷하던 그 이름이, 한 겹 흐려져 있었다. 살리면 잃는다. 거래는, 이 방 안에서도 공정하지 않았다.
"녹턴 분과장님."
숙이 그를 불러 세웠다. 기록부를 덮으며.
"베리타스는, 틀린 기록을 고치는 곳입니다. 오늘 것은… 고쳐 적겠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는, 더 적지 않겠습니다. 비워 두는 편이 나은 칸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가 잠깐 뜸을 들였다. 의미는, 늘 그렇듯 뒤늦게 왔다.
"다만 하나는 적어 두지요. 당신의 보고에는, 채워지지 않는 칸이 자꾸 늘어납니다. 정보원의 이름도, 그 출처도. 무언가를 알아낼 때마다, 당신은 그만큼을 비우는 듯하더군요. 기록하는 자의 눈에는, 그 빈 칸이 보입니다."
엑타르는 협의체의 문을 빠져나왔다.
품속의 전서를 펼쳤다. 엘리시온의 이름 위, 붉은 줄은 이미 마지막 자에 닿아 있었다. 변론하는 사이, 한나절이 다 가 버렸다.
늦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그가 향을 갈던 그 성소를 향해. 그가 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잊어가는, 한 형제의 노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