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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5 / 10

비켜난 죽음

# 5화 — 비켜난 죽음

붉은 줄은, 이제 엘리시온의 이름 위에 자라고 있었다.

엑타르는 그 종이를 접었다. 접어도, 줄이 번지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운명은 표적을 바꾸지 않았다. 죽음은 그저 막힌 자리에서 비껴나, 다음으로 또렷한 이름을 찾아갔다. 한 사람을 살리면 다른 이름이 떠오르고, 그 다음을 막으면 또 다음이. 그가 막을 수 있는 손은 둘뿐인데.

협의체에서 달려온 그가, 성가대로 들어섰다.

엘리시온은 거기 있었다. 의식의 성소, 성가대 자리. 낮게,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이렌의 목에서만 나오는, 물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선율. 매일 새벽, 엑타르가 향을 갈고 양초를 다듬는 동안 흘러나오던 소리. 미니스터의 일과 성가대의 일은 같은 성소를 나눠 썼다. 두 사람은 좀처럼 말을 섞지 않았으나, 같은 공기를 오래 호흡한 사이였다.

"형제."

엘리시온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분과장.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또 '우리'였다. 늘 그랬듯. 세이렌은 자신을 우리라 불렀다. 체내에 지닌 동족의 영혼들까지 한데 묶은, 하나이면서 여럿인 목소리.

엑타르는 그를 묶어둘 수도 있었다. 분과장의 권한으로, 파견을 막고 성소에 가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묶어둔 새는 줄을 끊고 더 멀리 난다. 통제는 사람을 멈추지 못한다. 다만 더 혼자가 되게 할 뿐.

그래서 그는 곁에 남는 쪽을 골랐다.

그때, 양초가 꺼졌다.

바람이 없었는데.

성소의 문이, 안쪽에서부터 어두워졌다. 향로의 연기가 거꾸로 빨려 들어갔다. 공기가 한순간, 사라졌다.

엑타르는 그 감각을 알았다. 공허가 입을 벌리는 감각. 끝에서 그를 본 그것이, 이제 가장 또렷한 이름을 거두러 온 것이었다.

"형제. 뒤로."

어둠 속에서 손이 뻗어 나왔다.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이름을 쓰는 손. 잉크가 아니라, 지움으로 쓰는 손이었다.

*철컥.*

엑타르가 방아쇠를 당겼다.

「 카에룰루스 플람메 」

*화르르륵—!*

푸른 화염이 성소를 밝히며, 그의 왼편으로 크게 호를 그렸다. 시선을 끄는 미끼.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쪽을 본다.

그 손은 보지 않았다.

화염을 그대로 통과해, 엘리시온에게로 곧장 뻗었다. 눈이 없는 것에게서 시선을 빼앗을 방법은 없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표식 그 자체였으니까.

엑타르는 후드의 심볼을 짚었다.

*스으으—….*

「 인필트레이터즈 디스코드 」

회색 안개가 성소를 둥글게 감쌌다. 지난 새벽 장서관에서, 이 안개는 적들을 잇던 모든 실을 끊어 놓았다.

이번엔, 달랐다.

안개는 침입한 적과 술자, 둘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먹어 치우는 빛이었다. 1:1의 봉인. 혼자 끝낼 때의 것이었다. 그런데 곁에 엘리시온이 있었다. 회색이 그의 윤곽을 핥기 시작했다—적과 함께, 지켜야 할 자마저 지우려는 듯이. 그리고 그 손은, 안개 속에서 오히려 또렷해졌다.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바깥을 끊어도 소용없었다. 그것은 이미 안에 있었다.

엑타르의 등줄기를 타고 익숙한 한기가 올랐다. 손에 쥔 도구가 하나씩 미끄러지는 감각. 그는 안개를 거뒀다—지킬 자가 곁에 있는 한, 혼자 끝내는 빛은 쓸 수 없었다. 대신 제 몸을 던졌다—엘리시온과 그 손 사이로.

*서걱.*

창이 손목을 갈랐다. 아니, 손목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베이지 않았다.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이내 도로 모였다. 벨 수 없는 것이었다. 카에룰루스 플람메로도, 그가 아직 받지 못한 그 창으로도.

미끼도, 안개도, 칼도. 그가 가진 전부가 차례로 무너졌다.

그 손이 엑타르를 스쳐 지났다. 그가 거기 없는 것처럼. 스친 왼손 끝 한 마디가, 차갑게 얇아졌다. 베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자리였다.

엑타르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손이 엘리시온의 가슴으로, 반 뼘.

그런데 엘리시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려움에 굳은 것이 아니라—듣고 있었다. 겪은 것을 새겨 한 톨도 잊지 못하는 자였으니까. 닿는 자리마다 존재가 한 겹씩 덜어지는 그것이 제 새김의 정반대임을, 그 자만이 알아챌 수 있었다. 벨 수 없는 것이라면, 벨 필요가 없었다. 칼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 닿을 손은—새기는 손뿐이었고, 그건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한 번에 새기려면 무엇을 한 번에 다 꺼내야 하는지, 그 값까지도, 엘리시온은 알았다.

엘리시온이 노래했다.

가사 없는 선율이, 이번엔 달랐다. 높고, 날카롭고—새기는 소리였다.

"우리는 경험한 것만 새길 수 있습니다."

「 낙인 」

그의 손끝이 희게 타올랐다. 세이렌이 겪은 모든 죽음을, 체내의 동족들이 삼킨 그 모든 소멸을, 그는 허공의 그 손 위에 새겼다. 지우려는 것 위에, 지워지지 않는 것을 얹었다.

공허의 손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그 찰나.

엑타르의 창이, 멈춰 선 그것의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콰드득—!*

표식이 비명도 없이 흩어졌다. 이번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성소가 조용해졌다. 양초가, 저 혼자 다시 타올랐다.

엘리시온이 무릎을 꿇었다. 노래가, 그의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너무 많은 죽음을 한 번에 새긴 대가였다.

"……우리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우리는—"

그리고, 무너졌다.

"……나는. 무서웠어요."

'나'였다.

처음으로, 엑타르는 엘리시온이 우리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세이렌의 방패가 깨지는 소리. 여럿 뒤에 숨었던 하나가, 잠시 드러나는 소리.

엑타르는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그 곁에 조용히 섰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한참 뒤, 엘리시온의 호흡이 잦아들었다. 그는 다시 우리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 손이 쓰는 것을."

엘리시온이 낮게 말했다.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새기는 것과, 정반대의."

엑타르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새기는 자와, 지우는 자. 엘리시온의 낙인이 그 손을 잠깐 멈춰 세운 이유가, 거기 있었다. 베어서가 아니라, 새겨서.

그러나 그 깨달음을 붙들 시간은 없었다.

품속에서, 전서가 뜨거워졌다.

엑타르는 그것을 펼쳤다. 엘리시온의 이름 위, 붉은 줄이 지워지고 있었다. 살아남았으니까.

그 아래로,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다섯. 열.

성역의 절반이, 붉어지고 있었다.

이름을 쓰는 손은, 이제 한 자루의 붓이 아니었다. 그가 죽음을 고쳐 쓸 때마다 지나온 자리에 손자국이 남았고, 바깥의 그것은 그 손자국을 따라 성역을 한 뼘씩 또렷이 보았다. 또렷이 본 만큼, 손이 늘어났다. 특히 엘리시온은—지움의 정반대인, 새기는 자였다. 그 새기는 자를 죽음에서 빼낸 자국이 가장 짙어, 단숨에 그것의 응시를 성역 절반으로 끌어당겼다.

그를 앞서 걷게 한 앎이, 도리어 등불이었다. 한 사람을 살릴 때마다, 세계를 지우는 것이 성역을 더 또렷이 보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일 수 없었다. 열일곱 개의 이름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엑타르는 하인리티스를 깨웠고, 비체에게 성소의 종을 울리게 했고, 아이기스 분과에 결계 순찰을 두 배로 돌리게 했다. 분과가, 성역이 움직였다. 그가 미래를 아는 자라서가 아니라, 어디를 먼저 막아야 하는지 아는 자라서.

첫 번째 이름은 식당의 들보였다. 그는 신의 언어로 무너지는 자리를 읽고, 그 아래를 비웠다. 어린 사제 하나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왔다. 자신이 방금 죽을 뻔했다는 것을, 그는 영영 모를 것이다. 모르는 편이 나았다. 엑타르가 지키려는 것은, 사람들이 지켜졌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런 평범한 새벽이었으니까.

세 번째 이름은 하인리티스가 맡았다. 엑타르가 길목을 일러주면, 그 사내는 묻지 않고 먼저 들어갔다. 오늘만은 그 천성이 일손 하나를 더 만들어 주었다.

다섯, 여섯, 일곱. 이름이 지워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분과가 움직였다. 엑타르가 다음 길목을 짚으면 누군가 그리로 달렸고, 죽기로 되어 있던 자가 영문도 모른 채 살아남았다. 한동안은, 따라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붉어지는 이름은 열일곱이었고, 막을 사람은 그보다 적었다.

결국, 그 순간이 왔다. 두 이름이 성역의 양 끝에서 동시에 붉어졌다. 동쪽 끝과 서쪽 끝. 분과의 일손은 이미 다른 이름들에 흩어져 있었고, 남은 것은 엑타르 자신의 두 발뿐이었다. 양쪽에 닿을 수는 없었다. 한쪽으로 달리는 순간, 다른 한쪽은 등지는 것이었다.

반 호흡. 그 짧은 사이에,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거리를 쟀다. 붉어지는 속도를 쟀다. 어느 쪽이 더 가깝고, 어느 쪽이 더 급한지를. 두 목숨을 저울에 올리고 있었다—한 번도 무게를 달아본 적 없다 믿어온 그가. 계산은 차가웠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그는 더 빨리 붉어지는 쪽으로 달렸다. 달렸다는 것은, 등 뒤의 하나를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가 등진 이름은, 봉인의 탑 정찰대원이었다. 바로 그 새벽, 그가 죽음의 명단에서 지워내 살려 보낸 자들 중 하나. 한 번은 살아 돌아왔던 사람이었다.

엑타르가 능선에 닿았을 때, 정찰대원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하인리티스처럼. 너무 늦게 도착한 새벽의, 식어 있던 손처럼.

엑타르는 그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그 새벽, 자신이 살려낸 얼굴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살려낸 자의 이름도, 방금 잃은 자의 이름도—그는 더는 쥐고 있지 못했다.

능선 아래에서, 하인리티스가 올라왔다. 다른 이름 하나를 막고, 곧장 달려온 길이었다. 그는 식은 정찰대원을 보았다. 그리고 엑타르를 보았다.

"……분과장이 못 막는 것도, 있군."

비난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엑타르가 평생 쌓아 올린 한 문장을 무너뜨렸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 문장이 옳으려면, 결과가 수단보다 무거워야 했다. 엘리시온 하나가, 이 식은 손 하나보다 무거운가. 엑타르는 그 저울을 들 수 없었다. 그는 무게를 다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는 다만, 두 손으로 다 쥘 수 없는 것을 쥐려다, 하나를 떨어뜨린 자였다.

엘리시온을 살린 손이, 이 사람을 죽였다. 같은 손이었다. 그의 손이었다.

엑타르는 죽은 자의 눈을 감겨 주었다. 손이 떨리지 않도록, 천천히.

"……미안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그 자신도 몰랐다. 이름을 모르는 자에게 건네는 사과는, 허공에 쓰는 글씨 같았다. 그는 평생 적에게도 동료에게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 사과는 결과를 바꾸지 못하니까. 그런데 오늘은,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그 말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통제가 무너지는, 또 다른 신호였다.

쫓아다니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일손을 둘 더 늘린다 해도, 바깥의 그것은 지우는 손을 넷으로 늘릴 것이다. 그가 지우는 속도를, 그것이 쓰는 속도가 앞질렀다.

근원으로 가야 했다. 이름을 쓰는 손의 주인. 그것이 그를 보고 있다면—그가 그것에게 걸어가면 된다.

엑타르는 품속의 전서를 꺼냈다. 붉어지는 이름들 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카에룰루스 플람메의 그을음을 잉크 삼아. 그리고 그 위로, 스스로 붉은 줄을 그었다.

미끼는, 가장 또렷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바깥의 그것에게 가장 또렷한 이름은—끝을 보고 돌아온 자의 것이었다.